vol. 29 종합 출판사 시공사의 예술, 교양 분야 도서를 발간하는 시공아트의 뉴스레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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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르치는 걸 책으로 써 보면 어떨까요?”
“네, 좋죠.”
3년 전, 옆 연구실 교수님의 흘리듯 한 말이 이 책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만화 스토리텔링’이라는 같은 과목을 함께 가르치고 있었고, 꽤 죽이 잘 맞았다. 커리큘럼은 비슷했지만 각자 좋아하는 장르나 접근 방식이 달라 가끔 만나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처음에는 책의 방향을 ‘~스토리텔링 법칙’으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과목을 쓰는 우리조차도 한 줄에 대한 해석과 예시가 다른데 어떻게 완전무결한 법칙을 논하겠는가.
작법서를 찾아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법칙’이다. ‘이렇게 하지 마라’, ‘이렇게 하라’ 등. 문장으로는 단호하고 매력적이지만 실제 학생을 가르칠 때 가장 주의하는 것이 이러한 태도다. 웹툰과 웹소설은 젊은 창작자들이 두각을 드러내는 분야다. ‘무작정 하라’고 가르칠 수도 없고, 흔히 생각하는 소재와 모티프 위주로 가르칠 수도 없다. 소위 교수가 학생을 가르친다고 하면 현학적이거나, 도제식 수업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웹툰-웹소설 분야에서는 불가능하다. 학생들은 법칙을 원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법칙을 말하면서 이렇게 가르쳤다.
“법칙을 안다면, 이제는 깨야 합니다.”
학생들과 일대일 작품 피드백을 진행하면서 개인적으로 받은 질문들, 때로는 졸업한 제자가 차기작을 준비하다가 막혔다며 연구실에 찾아왔을 때 받은 질문들을 모으고 모아 책을 썼다. 학생들과 주고받은 메일함, 면담 전에 이것저것 적어 두었던 노트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노트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는 안 쓸래요’, ‘이렇게 할래요’ 버티는 두 저자 때문에 고생하신 편집자님이나 분명히 옆 연구실에 있는데 서로 원고 쓰는 동안에는 의식적으로 얼굴을 보지 않았던 공저자 양 교수님이나 만화가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스토리는 왜 배워야 하냐며 골치 아픈 질문을 던졌던 학생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책이 출간되었다. 책을 쓰며 내가 바란 것은 딱 하나다. 실제로 작가들이 작업을 하다 말고 막혔을 때 펼칠 수 있는 책이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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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17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37회 청룡영화상, 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25회 부일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한 《동주》 오리지널 각본집
- 시인 오은 에세이, 스틸 컷, 윤동주․송몽규 연보, 영화에 나온 윤동주의 시들, 작가 인터뷰 수록
시인 윤동주를 모르는 이는 없다. 그의 시 몇 구절은 언제고 읊을 수 있고, 굳게 다문 입술이며 생김새는 눈을 감아도 또렷하게 그릴 수 있다. 《동주》는 스스럼없이 국민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윤동주의 삶을 그려 낸다. 그런데 영화를 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여겼던 시인의 몰랐던 얼굴과 새로운 이야기에 놀라고, 미안해지고, 묵직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당혹스러워진다.
영화 《동주》의 오리지널 각본을 담은 이 책은 영화가 끝나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한 관객들의 마음을 빈틈없이 채워 준다. 영화는 2016년에 개봉했지만 몇 차례의 재개봉과 n차 관람이 이어졌다. 송몽규라는 인물을 재발견했고, 영화의 두 주인공은 라이징 스타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윤동주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고 시인이 목숨을 바쳐 갈망했던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희망하는지를 묻게 했다. 이제 관객들은 책을 통해 마음껏 또 오래도록 영화를 사랑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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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만들 때마다 생각한다. 이 책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내용으로 완성될까? 편집자가 달라지면 책의 안팎이 바뀐다. 그래서 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면 어떻게 만졌을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허공에다 손을 휘저어 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캄캄한 동굴 속 여행자처럼.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책은 늘 처음 예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다. 작가의 글이 어떻게 완성될지 알 수 없고, 디자이너가 어떤 표지를 잡아 줄지 모른다. 또 넣고 싶은 구성은 항상 변수가 생기고, 제작 단계에서는 비용도 큰 영향을 미친다.
『동주』는 드물게 처음의 구성 그대로가 나온 경우다. 영화 《동주》의 각본집을 만들고 싶다며 저자와 만났을 때 지금 책의 구성 요소인 스틸 컷, 윤동주의 시들, 작가 인터뷰, 다른 시인의 글 등을 담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 모두 들어 있다. 사은품으로는 이걸 해야지, 염두에 두었던 포토카드까지!
그 사이사이 일들은… 나만의 몫으로 두어야지. 나에게는 ‘졸업 작품’ 같은 책이다. 이제 어떤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윤동주 시인처럼 살 수 있을까? 마지막 작가 인터뷰에 실린 글처럼 시인 윤동주를 내세운 건 어떤 의미에서는 반칙이다. 우리 모두가 「서시」를 외우지 않았던가. 실은 그 내용과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의 시를 사랑한 나였음이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지.
- 에디터 honeyp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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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의 기쁨과 슬픔
코로나에 타격을 입고 휘청한 산업 중엔 영화도 있다. 취향 저격 콘텐츠를 집콕하며 즐기는 것이 더 확고한 대세가 되며 이미 부상하던 OTT플랫폼들은 호재를 만났다. 그럼에도 미세한 진동까지 느껴지는 강렬한 음향과 드넓은 시야의 스크린으로 영화를 즐기고픈 묘한 갈증은 있었다. 일종의 향수일까. 코로나 진정 국면이라 여겨진 짧은 몇 달 사이 많은 이들이 극장을 찾았고 천만 영화는 다시금 탄생했다. 최근 영화들은 높은 관객 평점을 얻기 힘들 것이란 글을 인터넷에서 보았다. 관람비가 과거보다 월등히 상승했고, 극장을 찾는 일 자체가 큰 결심을 요하는 것이 되면서 큰 맘 먹고 온 관객은 고르고 골라 실패하지 않을 작품을 원한다는 것이다. 지불 비용이 높을수록 기대치는 높아지고 평가도 훨씬 엄격해 지기 마련이다. 신간과 구간이 물결을 이루는 서점에 들를 때면 많은 분들이 열심히 책장을 넘기고 계신다. 그 마음의 필요와 관심은 무엇일지 늘 궁금하다. 언젠가 내가 만든 책을 집어 드는 분을 본 적이 있다.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괜히 주변을 서성였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 책을 내려놓으실 때까지 내내 두근두근했던 기억이다. 인터넷 서점에도 리뷰와 평점이 있다. 서평단으로서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에 남긴 점수는 대체로 후하지만 내돈내산 도서에 정성스럽게 적은 솔직한 평가는 다양하게 엇갈린다. 진심 어린 찬사와 날선 혹평, 혹은 그보다 더 무섭다는 무관심 사이에 서는 수많은 책, 영화, 음악, 공연... 수년의 복잡다단한 곡절을 거쳐 겨우 빛을 보는 창작물들. 지갑을 기꺼이 열 만큼 흡족할 콘텐츠가 가장 원하는 이에게 가닿을 방법은 무엇인가. 끝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저마다의 고민은 깊어 간다.
- 에디터 pe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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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왜 창작력을 발휘해야 하는가?
창작력만큼 사람들을 관대하고 즐겁고 활기차고 대담하고 훈훈하게 만들어 재물이나 다툼에 무관심하게 해 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브렌다 유랜드(Brenda U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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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성동구 상원1길 22 북스사업본부 예술교양팀 (시공사 출판사) sialetter@sigong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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