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45 종합 출판사 시공사의 예술, 교양 분야 도서를 발간하는 시공아트의 뉴스레터입니다. |
|
|
|
<예술, 현재진행형>
작품을 ‘무엇’으로 만드는가는 당신이 ‘누구’일지를 정의한다
195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대미술 시작은 ‘제작’이란 키워드를 제외하고는 이해할 수 없다. 회화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 그리고 크라우드소싱에 이르기까지, 지난 수십 년 동안 예술품을 제작하는 방식은 더 비범하고 다채롭게 진화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제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은 드물다.
글렌 애덤슨과 줄리아 브라이언-윌슨은 1950년대 이후 미술의 제작과 미디어에 대해 폭넓게 탐구하며, 창작이 이루어지는 스튜디오와 공장 그리고 여타 장소들의 이면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예술가가 사용하는 재료와 제작 과정은, 예술을 둘러싼 경제적·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핵심으로 작용한다.
『예술, 현재진행형』은 아홉 개의 주제를 통해 예술가의 사고와 제작의 교차점에 주목한다. 각 장은 회화, 목조, 건축, 퍼포먼스, 도구정비, 돈, 외주 제작, 디지털화, 크라우드소싱이라는 특정 제작 과정에 초점을 둔다. 폭넓은 주제들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 예시와 시각 자료들로 함께 직조되며 테크닉과 재료의 선택에 관여하는 논리를 드러낸다. 앨리스 에이콕, 주디 시카고, 이사 겐즈켄, 로스 카핀테로스, 폴 파이퍼, 도리스 살세도, 산티아고 시에라, 레이첼 화이트리드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심미적이고 개념적인 활동의 전 영역을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조망하는『예술, 현재진행형』. 현대미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것이 왜 중요한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
|
역자 후기
나라는 기계.
좋은 시대와 공간에 나고 자라, 일상에서 수준 높은 미술을 접하며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삶을 영위하는 와중, 미술에 대한 번역서의 후기에 문득 음식 이야기를 슬쩍 끼워 넣는다. 요즘은 이 두 가지가 나와 주변인들의 삶과 대화의 중요한 화두가 된다.
조선의 문인화를 배울 때, 군자의 육예(예, 악, 사, 어, 서, 수)와 풍류에 대한 강의를 들은 바 있다. 시간을 두고 가만 생각해 보니, 세상을 구경하며 미술과 영화를 감상하고, 더 유려한 문체를 찾아 원고의 문장을 가다듬는 나의 일상이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독락의 풍류 세계에 맞닿는 지점이 있었다. 밤마다 반성의 거울을 닦던 손길에 잠시 뿌듯한 자부심의 전류가 흐른다. 물론 오래가진 않는다. 조선 후기에는 그림을 그리는 선비들도 등장하지만, 대체로 군자의 붓은 서예를 위한 것이었다. 회화란 감상을 통해 그 정취를 즐기며, 이를 통해 마음이 동하지만 너무 들뜨지 않는 상태로 정돈시키는 데 그 의의가 있었다. 비평의 관점은 그림을 그리는 손이나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와 마음을 향한다.
음식의 경우는 비평 자체가 드물다.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음식’과 ‘남녀’ 간의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들은 동물적인 천한 행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조선 중기의 문인 허균은 이 원칙을 거스르고 생명과 관계되는 본성에 대해 말하기를 택했다. 그가 쓴 <도문대작인>은 음식의 맛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뿐 아니라, 재료와 먹는 법 등의 구체적인 자료와 정보를 담고 있어서 식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를 테면 그는, 서울에서 맛있는 음식 중 두부를 꼽으며 “두부는 장의문 밖 사람이 잘 만든다. 말할 수 없이 연하다”라고 적는다.
최근 식문화가 대중문화의 선두에 나서면서 일상에서 음식 비평을 흔히 접하게 되는데, 관련된 논의에서 두 가지 태도를 관찰한다. 하나는 음식의 맛이나 그것을 경험하는 환경에 초점을 두고, 다른 하나는 그 음식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서울의 유명한 냉면집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의 버거집에 가서 가격과 유명세에 합당한 맛이나 서비스인지를 논의하는 태도가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육수를 내는 고기의 가격과 종류, 조미료 사용 여부, 오너 셰프가 요리에 참여하는지를 평가에 반영하는 태도가 있다. 물론 누군가의 비평에는 두 가지 내용이 모두 들어가는 일이 흔하다.
미술품 제작을 주제로 하는 『예술, 현재진행형』은 예술에 대해 후자의 태도를 견지한다. 요리사에게 MSG를 사용하는가, 재료는 어디서 가져오며 어떻게 보관하는가에 대해 묻는 질문들이 자칫 불편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그런 부분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다수다. 건강과 위생에 관련된 경우이기에 그렇다. 다수의 사람들이 조각이나 건축, 그림을 보면서 비슷한 의문을 품는다. 어떤 미술 교수가 만든 대규모 설치 작업에 그의 조수인 대학원생들은 얼마나 참여했으며, 어떤 보수를 받았을까? 크레디트에는 그들의 이름이 등장하는가? 그의 작업은 그보다 10년 전에 제작된 독일 저명 작가의 비슷한 형상의 작품으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았을까? 키네틱이나 디지털, 영상 작업의 경우 상황이 더 복잡하다. 제작사와 작가는 각기 어떤 부분에서 얼마나 작품에 기여했는가? 미술계의 모두가 서로 만나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글로 적지 않는다. 윤리와 도덕, 명예에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특히 예민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책의 2장에서 회화를 뒤집어 캔버스를 지탱하는 지지대를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바라보는 시각, 앵글이 바뀌면 해석도 의미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저자들이 내세우는 ‘제작’이라는 도전적인 앵글이 기존 미술계에 별다른 위협이나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수도 있다. 평가란 주관적이고, 같은 작품을 바라보는 다수의 앵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론에서 이야기하듯, 현대미술에서 더는 넘어서야 하는 장벽이나 터부가 없으며, 모든 의견과 시각은 평준화된 선상에서 더 많은 관심을 끌기 위해 전략을 세운다. 흔히 이야기하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이다.
현대미술을 공부해 온 사람으로서, 이 책을 번역하면서 특히 서구권의 미술에 대해 전혀 새롭거나 놀라운 내용을 많이 접하진 못했다. (물론 대중의 시각은 사뭇 다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연구자들이 수준 높은 문장으로 엮어 내어 책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 모든 이야기들이 즐겁고 반가웠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오랜 미술 공부를 통해 내부에 형성된 어떤 태도와 시각이 자극과 영감을 받는 경험을 했다. 또한 번역을 진행하던 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비관하며 멈춰 서서 편집팀의 신세를 많이 졌고, 특히 스스로와 주변인들의 인내심을 실험하는 일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기다려 주고 최선을 다해 같이 작업을 진행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글을 갖고 놀다 보면, 의외의 문장이 마음에 큰 위안을 줄 때가 있다. 물질적으로는 고작 몇 가지 단어의 조합일 뿐인데, 그것을 통해 글을 쓴 사람과 결코 잊지 못할 공감을 경험할 때가 있다. 이 책에서는 5장, 레베카 혼의 글이 그랬다. 끝으로 그것을 옮겨 적으며, 후기를 마무리한다.
“내 기계들은 세탁기도 차도 아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특질을 갖고 있고, 반드시 변화한다. 그들은 긴장하며 때론 멈춰 서기도 한다. 만일 어떤 기계가 멈춘다면, 고장 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피곤한 것이다. 기계들의 비극적이고 우울한 면모가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 나는 그들이 영구히 작동하길 원치 않는다. 멈춰 서고 의식을 잃는 것이 그들 삶의 일부다.” (레베카 혼, 바스티유 인터뷰 2, 파리 1993)
|
|
|
편집 후기
여러분들께 <예술, 현재진행형>을 소개해 드릴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세상에 나오길 오래도록 기다린 책입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어서 그런지, 실물을 보고서야 마감했다는 사실이 와닿더라고요. 현대미술의 제작을 엿보는 책이었던 만큼 보이지 않은 손길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캔버스의 뒷면을 고정하는 작업가, 미술품을 옮겨 온 자동차 운전사, 작품 재료로 쓰인 병뚜껑을 만든 어느 공장의 노동자 등등 말이죠. 제작은 정말 복잡하게 서로 얽혀있는 '현상'이었어요. 작가가 제작 과정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임하느냐에 따라 작품을 해석하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같은 뜨개질 작품이더라도 공장에서 만든 것과 마을과 협력해 만든 작품은 다른 의미를 가지겠죠. 서문의 말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각양각색으로 등장하는 현대미술의 '목격자'가 된 우리로서, 관객은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확장되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제반의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
|
<이탈리아 미술관 산책>
예술의 천국에서 만나는 인류의 보물들
시대와 양식을 넘나드는 이탈리아 예술
나만의 도슨트가 된 전문가와 함께 떠나다
유럽 예술의 탄생지 이탈리아는 말 그대로 예술의 천국이다. 서양미술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거대한 프로젝트를 지원한 로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을 배출한 피렌체를 비롯해 밀라노, 베네치아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의 미술관들은 모든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된 고대 로마의 예술품을 품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예술뿐 아니라 서양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들이다.
조각가인 저자가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직접 경험한 이탈리아의 생생한 이야기와 함께 한 곳 한 곳 정성 들여 만나고 온 이탈리아 미술관과 소장품에 대해 들려준다.
유럽으로 향하는 배낭 속에 『이탈리아 미술관 산책』을 가볍게 챙겨 그 궤적을 따라 함께 산책해 보시길 추천한다. 가장 정성스럽고 유익한 가이드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
|
|
저자의 말
이 책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진 경험과 예술로 덮인 주변의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이 호기심은 미술관으로, 박물관으로, 오래된 성당과 이름 모를 유적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공간들이 선물한 예술적 감흥을 일부나마 기록하고 추억하는 기회가 되어 늘 기쁜 마음으로 글을 썼다.
책을 쓴다는 것은 다분히 개인적인 예술적 이끌림으로 작품을 마주할 때와는 또 다른 마음가짐을 갖게 했다. 공간 속 작품을 마주하며 평면 작품의 붓 터치 하나하나와 입체 작품에서 보이는 수없이 많은 형태의 변화를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표현 너머 존재할 작가나 주문자의 의도와 마음 역시 이해하려 했다. 그 과정 중에 생겨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작품의 탄생 배경이나 시대적 상황, 작가의 심리 등에도 관심 갖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어떤 곳의 작품들은 인파 속에서 작품과 함께 호흡하며 관계를 발전시키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좋다”라고 느꼈던 작품들의 이유가 점점 선명해졌다.
이 책의 내용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감상을 바탕으로 한다. 거기에 좀 더 깊은 감상을 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나름의 상상과 의견을 곁들였다. 그리고 단순히 작품 하나를 설명하기보다는 문화, 예술, 정치, 역사 등 작품에 관련된 사회 현상들과 함께 미술표현의 기법과 그 안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썼다. 그 이유는 책을 세심히 읽는 이가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작품을 마주했을 때에도 생소함에 뒷걸음치지 않고 자신 있게 작품을 향할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 때문이다.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자료로 이탈리아어로 된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도록, 홈페이지, 브로슈어, 전시장 내 안내판 등을 중점적으로 참고하였다. 예술에 대한 애정이 강한 나라답게 작품과 관련된 깊은 정보들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예술과 문화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이를 통해 느껴져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이 책은 대부분 이탈리아라는 한정된 지역을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만을 다루고 있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부터 근현대까지의 미술 이야기가 부족하나마 담길 수 있도록 노력했다. 로마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과 함께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하였고, 피렌체에서는 르네상스 회화, 조각과 함께 피렌체를 르네상스 도시로 만든 메디치 가문과 관련된 건축물을 함께 다루었다. 밀라노에서는 여러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들과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작품과 1900년대 초반에 활동한 근현대 이탈리아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였고, 베네치아에서는 베네치아만의 독특한 문화 속에서 탄생한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회화 작품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이렇게 다양한 시대와 양식을 가진 미술을 한 나라에서 탄생한 작품들로 소개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탈리아가 가진 예술적인 저력일 것이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물질로 남겨진 미술 작품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작품을 매개로 하여 작품의 뒤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시대의 “사람들”을 독자들이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작품들은 마치 영원히 문 닫지 않는 단골가게의 주인처럼 언젠가 다시 찾을 때 입꼬리 한껏 올린 여전한 미소로 반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구성하는 도시 중 밀라노 미술관에 관한 자료 조사는 2020년 1월경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에 관련된 자료들은 왕관 쓴 질병Corona이 한창이던 2020년 7–8월 여름에 재방문하며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미술 작가로서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는 시기이기도 했고, 소위 록다운(Lockdown)이라고 불리는 모든 사회활동이 정지되는 시기가 끝나 이탈리아 내의 이동이 그나마 자유로운 불행 중 다행인 시기였다. 하지만 이 기간 내내 보이지 않는 질병에 대한 여전한 불안과 40도에 육박하는 더위는 온전히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자료 조사와 방문을 서두른 이유는 이탈리아에서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던 한 사람으로서의 감정과 태도를 잃지 않고 작품을 느끼며 책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갈등의 시기에 뜨거운 더위와 마스크 위로 보이는 어색한 눈빛들 속에서도 태양보다 더욱 따뜻하고, 차가운 시선들보다 더욱 냉철하게 도와준 이와 함께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을 기쁘고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던 점은 이 책이 가져다준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또한 한 명의 예술가 탄생을 고대하며 헌신한 한국의 가족들, 이탈리아의 문화와 사람을 믿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준 판디노(Pandino)와 베르가모(Bergamo)의 가족들(Marina Pino, Grazia Teresella) 그리고 밀라노에 머문 9년간 늘 천사와 같았던, 하지만 이 책의 출판까지는 기다려 주지 않은 조각가 마태오 베라(Lo Scultore Matteo Berra 1977-2023)와 늘 올바른 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셨던 그라치아노 베라(Graziano Berra 1946-2023)에게 아쉬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
|
편집 후기
‘책의 운명’을 운운한 적이 몇 번 있는데요. 정말이다 싶습니다. 비교적 유복한 시절을 지나 순조롭게 책의 형상을 입는 경우도 있는 반면, 유난히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영웅도 있어요. 이 책처럼요.
나름의 경험을 통해 보아도 예술을 친근하게 들려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사전지식이 다른 대중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하면 앎의 깊이를 현학적으로 토해내면 예술서의 높은 문턱은 조금도 낮아지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소위 재미 일변도로 ‘썰’에 의존한 서술은 그 파급력을 생각할 때 아찔하고 위험합니다. 정설이 아닌 내용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챗GPT의 ‘아무 말’을 보며 소름 돋는 것처럼요. 그럼 당최 누가 어떻게 책을 쓸 수 있을까요. 전설 속 용을 무찌르러 출정하는 비장한 각오 정도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 봅니다.
이런 배경에서도 『이탈리아 미술관 산책』은 분명 양질의 콘텐츠라 믿습니다. 지식의 깊이와 순수한 애정의 시선을 겸비한 서술로 채웠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깊은 시공아트에서 몇 해째 이어온 ‘미술관 산책 시리즈’ 신간이면서도 현 시점의 더 많은 독자님들과 잘 만나고 싶어서 좀 더 넉넉한 판형에 새로운 스타일의 디자인을 입었습니다. 많은 고심이 필요했던 다양한 요소에 디자인이라는 마법으로 아름다운 질서를 부여하면서 담당자의 진심 어린 감탄과 감사를 자아낸 디자이너께 큰 감사를 보냅니다. 덕분에 책이 개선된 형태를 갖추며 완성을 향한 진일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예술가로서 더 널리 예술을 소개하려는 꿈을 품고 집필을 마치신 저자께 기립박수를 전하고 싶습니다. 조각 공부를 하며 10여 년 이탈리아에 거주한 동안 예술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직접 발로 뛰고 걸으며 정말이지 방대한 자료를 취재하셨습니다. 만약 이탈리아 미술관 곳곳을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측면에서 그 모든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면 여러 권의 시리즈가 되었을 법한 수천 페이지 분량입니다. 그러한 수고로 빚은 성과에서 편집의 묘를 위해 기꺼이 많은 부분을 덜어 내고 선별하여 완성한 결과물입니다. 수년의 인내와 엄청난 노력이 빚은 정수입니다.
감사하게도 책을 준비하는 동안 저자분의 여러 전시 현장에 초대를 받아 예술 작가로서의 다채로운 활동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현직 아티스트로서도 더 많은 활약을 이어가시리라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
|
|
이탈리아행을 꿈꾸는 여러분을 위한
또 하나의 탁월한 길잡이
🧡 *Just go 시리즈* |
|
|
2023년을 보내고 2024년을 맞이하며, 시아레터와의 짧은 안녕까지 담은
사랑스러운 연말 인사를 그려 주셨습니다!
매달 귀한 시간과 정성을 선물해 주신 캔들님,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
|
|
Art Actually is All Around
귓가의 플레이리스트, 손끝의 낙서, 푹 빠진 책과 영화...
예술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시아가 만난 사람들과 함께 '취미로서의 예술'을 생각해 봅니다.
|
|
|
(첼로)는 나에게 취미로서의 예술이다
: 첼로를 손에 잡은 지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그간 듣고 즐기기만 하던 현악기를 마침내 품에 안았을 때의 감각, 서툴지만 처음 활로 현을 그었을 때 몸에 전해 오던 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피아노도, 플루트도 배워본 적이 있지만 내 몸과 함께 울리는 악기는 처음이었죠.
소위 '클덕'으로서, 수년간 부지런히 훌륭한 연주를 들으러 다녔습니다. 연주 하나 듣겠다고 비행기 타고 제주도까지 갔을 정도로요. 취미가 클래식 음악 감상이라고 하면 흔히 '굉장히 교양 넘치는 취미를 가지고 계시군요'라는 말이나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취미가 아니냐'는 말을 듣는데, 제게 클래식은 그저 수없이 다양한 음악 장르 중 하나일 뿐입니다(물론 티켓값은 비쌀 때가 많습니다... 울고 싶다).
클래식을 아주 고루하고 과시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지극히 현대적인 종합예술로 다가옵니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가 이미 사망한 상태이고, 악보만 남아 있습니다. 작곡가의 의도, 작곡의 배경, 지시어에 담긴 의미, 심지어 정확한 빠르기나 세기도 확인할 길이 없죠. 악보에 '안단테(걷는 정도의 속도로, 느리게)'라고 쓰여 있는데 그게 BPM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는지, '포르테(세게)'라고 쓰여 있는데 데시벨로 따지면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악보를 마주한 현대의 연주자들은 본인의 '해석'을 담아 연주합니다. 하나의 악보를 놓고도 매일 새로운 연주가 태어나는 셈이죠. 이보다 더 현대적인 음악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런 제 덕질은 첼로를 배움으로써 완성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눈으로, 귀로 경험하던 것을 제 몸으로 실현하는 셈이니까요. 실력이 쑥쑥 늘어 언젠가 제가 음악을 들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연주를 통해 전해줄 만큼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이 취미는 나를 (겸허)하게 만든다
: 현악기는 까탈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악기가 나무로 만들어졌기에 온도, 습도를 타는 것은 물론이고 활털을 잘 조였는지, 송진이 충분히 발렸는지, 팔꿈치와 어깨의 각도가 정확한지, 활에 바르게 힘을 싣고 있는지 등등 수없이 많은 조건을 충족해야 비로소 원하는 소리가 나죠.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지판(현을 손가락으로 눌러 음정을 조절할 수 있게 하는 받침)에 도레미가 어딘지 보여주는 그 어떤 표시도 없습니다. 오로지 연주자의 감각에만 의존해 올바른 음정을 내야 해요. 전문 연주자들조차 하루만 연습을 걸러도 감각이 달라진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연습이든 레슨이든, 매번 악기를 쥘 때마다 저는 한없이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악기가 절 혼내는 것 같거든요. "에헤이, 어깨가 그렇게 말려 있으면 난 소리 못 내지." "연습을 안 했군. 거기가 '솔'이냐!" 때로는 서운하고 억울하지만, 어쩔 수 있나요. 제가 연습을 덜 한 탓인 것을.
뭐든 가능하다면
(한번 배우면 잊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 자신에게 바라는 점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어떨 때는 감정을 현명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또 어떨 때는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취미라는 주제에서라면... 제발 한번 배우면 까먹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학창 시절을 지나 어느덧 직장 생활 10년 차가 되고 나니, 한번 연습했던 곡도 한 달만 지나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는데, 지난 주 레슨 내용도 까먹기 일쑤지요. 게다가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멀티 플레이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어깨를 내리고, 손목을 펴고, 눈으로 악보를 읽고, 음의 길이만큼 오른손으로 활을 일정하게 그으면서 동시에 왼손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맞는 음정을 짚어내는 일. 이 모든 걸 머릿속에 넣고 움직이기란 정말... 원고 교정을 하루에 100쪽 보는 것보다 어렵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살면서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자꾸만 잊어버린다고 느낄 때만큼 허망한 순간이 없죠. 눈에, 머리에 꼭꼭 담아두었다고 생각한 기억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휘발되어버리고 없을 때. 물론 망각의 미덕도 존재합니다만, 저는 음악이라는 이 취미 안에서만큼은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 취미 속 지금 최애는 (비밀)이다
: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수없이 많은 아티스트 중에도 제 최애는 분명 있습니다(조성진? 임윤찬? 아닙니다). 최애 피아니스트도 있고, 최애 지휘자도 있고, 최애 첼리스트도 있어요. 하지만 최애의 기준이 '실력이 가장 좋은 아티스트'가 아니기에, 여기서는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제 취향이 공개되는 터라 민낯으로 강남역 한복판에 서는 기분이 된달까요.
다만 그 기준이라는 것을 살짝 풀어보겠습니다. 저는 그 연주자의 성격과 가치관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클래식계에 '성격대로 연주한다'는 말이 흔히 돌 만큼, 연주자마다 자기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연주할 때 고스란히 드러나고요. 어떤 사람은 아주 이성적이고 철두철미한 연주를 합니다. 상대적으로 화려하고 자유로운 연주를 하는 사람도 있고요. 저는 감정의 폭이 넓고, 자신감 넘치고, 밀도 높고, 드라마틱한 연주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음악을 진심으로 대하는 아티스트가 좋아요. 저는 특히 독주회 프로그램을 아주 꼼꼼히 봅니다. 보통 1부 40분, 2부 40분이나 되는 시간을 어떤 곡들로 채우는지, 왜 A곡 다음에 B곡을 넣었는지, 왜 그 작곡가를 골랐는지... 공연 프로그램은 책의 차례와 같죠. 차례만 보아도 그 책의 내용과 구조를 대강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데서 연주자의 가치관과 평소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제 마음속에 ‘최애’로 정착한 연주자가 이제 여럿 생겼어요. 꼭 클래식이 아니더라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 어떤 분야의 ‘최애’가 있었으면 합니다. 취미 생활의 밀도가 달라지거든요.
|
|
|
예술에서 일상으로, 그리고 위안이 된 책들
시공아트, 제이미 캄플린, 마리아 라나우로 지음, 이연식 옮김
|
|
|
베르트 모리조, 〈독서Reading〉, 1873
캔버스에 유채, 46×71.8, 클리블랜드 미술관
귀스타브 제프루아Gustave Geffroy(69쪽 참조)는 베르트 모리조를 (메리 커샛Mary Cassatt과 마리 브라크몽Marie Bracquemond과 함께) ‘인상주의의 세 귀부인’이라고 불 렀다. 1873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모리로가 일드프랑스 모르쿠르에 있는 자신의 집 정원에 앉아 있는 언니 에드마를 그린 것이다. 이제 정원은 화사하게 차려입고, 또 책도 읽는, 이중의 즐거움을 누리는 장소가 되었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증 손녀이기도 했던 자매는 열심히 그림 공부를 했다. 화가는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에 프레데리크 바지유Frédéric Bazille의 그림에 대해 썼는데, 바지유의 그림은 이들 자매도 자주 그렸던 야외에 있는 인물을 담고 있었다. 베르트 모리로는 이 그림을 1874년에 열린 첫 번째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했다. [본문 211쪽에서] |
|
|
리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바위가 되는 법>을 보고 왔습니다.
2층에 올라가면 작은 교실이 있습니다. 칠판에는 각종 화학 요소가 적혀 있고, 옆에 티브이에서는 강의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있는 건 본드, 집게, 선풍기, 전기포트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입니다. 강의는 이런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너희는 도구에 불과해. 쓰고 버려지는 도구. 몇몇 사람들이 너희를 자아가 있는 것처럼, 소중한 것처럼 대하는데 그건 자신의 감정에 휩쓸린 것뿐이야. 사람이 쓰다가 버리는 물건, 그게 너희야. 알았지?"
이 작품은 김범 작가의 2010년도에 나온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입니다. 도구에 불과하다며 강의까지 하는 사람이 누구보다 도구를 도구가 아니게 대하고 있는 상황. 말과 다르게 열정적인 태도의 선생님과 그걸 경청하는 도구들. 보다 보면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듣고 있는 도구 모두가 모범생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의자가 너무 커서 걸터앉아 있는 물건도 귀엽게 보이고요.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끼는지 뱅글뱅글 작품 주위를 돌아다닙니다. 도구가 도구라는 사실이 도구에게 상처가 될까 봐 알려주는 작가의 마음이 웃기고 좋아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악에만 주목하는 작품은 보지 않게 됩니다. 힘들이지 않아도 주변에서 쏟아지는 소식은 현실에 많습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건 결국 다정한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마음이 쓰여서, 생각이 나서, 지나치지 못해서, 걸려 머무르는 모든 곳들에요. 누군가에겐 쉽게 버리는 물건에 마음을 쓰는 작가처럼 내년에는 더 다정하게 살아보고 싶다 다짐하는 12월입니다. |
|
|
안젤름 키퍼 개인전 전시작
《Wer jerzt kein Haus hat》 부분, 헤레디움 |
|
|
12월의 일기
시간에는 어떤 선도 그어져 있지 않지만 인간 편의로 구획 지은 단위를 통해 지나온 걸음을 이따금 돌아보는 것 같습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네 개의 분기, 반 년... 이런저런 기점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심 어린 놀라움을 뱉습니다. 시간이 이토록 빠르다니요!
그것을 반기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모두에게 ‘변화’란 숙명입니다. 자의로 택하는 모험도 있으나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일들도 많지요. 지난 시간의 공습을 통과하다 보니 모르는 사이 배우게 된 것도 많은 듯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진리임에도 한때는 당위에 대한 완고함으로 본능적으로 거부하려고도 했는지 모릅니다. 이를테면 현실의 많은 부분은 불완전한 채로 흘러가게 마련이며 우당탕하는 가운데 성장과 성숙도 도래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변명하자면 생래적으로 장착된 완벽주의는 비현실적인 기준과 바람을 좇게 만들어요. 과하면 통제에 대한 집착이 되기 쉽죠. 그게 개인의 영역이면 자기 혹사 정도로 귀결되지만, 수많은 사람과 절차를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면 상상보다 큰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통제 밖인 사안의 홍수 속에 목표를 이루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인정하기 싫지만, 그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아니었다면 안전지대라 믿는 어떤 범위에 머물며 아무 문제없다고 착각하며 살기도 쉬울 것 같습니다. 존재는 행복이기도 하지만 날선 아픔일 때도 있다는 사실을 홀로 깨달을 리 없고, 순식간에 치고 올라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측정되는 얕은 내면이나 편협한 본심을 파악조차 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도 예기치 않은 변수는 늘 당혹스럽습니다. 지나치게 버거울 때는 노엽기도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요.
꺼내 쓸 경험치도 없는 생경한 사안은 더 큰 도전입니다. 미성숙한 실체를 스스로 확인하며 하릴없이 나름의 최선을 찾아봅니다. 생존과 안위를 위해서도 점차 더 나은 방법과 태도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현실의 파도에 첨벙대는 순간을 거치며 ‘그래, 사랑은 실상 과정 자체였구나’ 새삼 깨닫습니다. 물론 누구도 인생의 교훈을 얻겠다며 그토록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성숙해질 기회를 빙자해 그런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고요. 피할 수 없던 시간에 힘든 성장통과 함께 이왕 찾아 낸 가치이니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2023년을 채운 오르내림을 돌아봅니다. 무척 애썼으나 썩 좋지 못했던 결과도 있고 아무 기여 없이 누린 행운도 있네요. (장하다 LG!) 만남도 작별도 눈물도 웃음도 풍성했습니다. 그 안에서 좀 더 깊어진 자기 이해에 다다랐기를 바랍니다. 안개가 짙고 여전히 길의 시작과 끝은 가늠할 수 없으나 담담히 미지의 새 날을 맞이하기로 합니다.
|
|
|
올해의 색에서는 "친밀감과 연결에 대한 타고난 갈망을 반영"하고자 했다는 군요. 선정에 관여한 담당자(Leatrice Eiseman)의 표현에 따르면 이 복숭아 빛깔은 "따뜻함과 현대적인 우아함이 빛나는 색상"으로,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촉각적인 포옹을 제공하며, 젊음과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려는 의도를 담았다고 합니다.
|
|
|
이번 호 제목은 밴드 린킨파크의 앨범
'하이브리드 시어리'의 수록곡
<마이 디셈버>에서 빌렸습니다. |
|
|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올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바쁜 숨을 고르기 위해 시아레터가 잠시 쉬어갑니다.
언제 어떤 신간 소식과 함께 인사드리게 될지 모르나
너무 멀지 않은 날, 더 반갑게 재회하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 함께해 주신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
|
시공사 출판사sialetter@sigongsa.com서울 성동구 상원1길 22 굿타워 7-8층 시공사 북스개발본부 예술교양팀 02-2046-2844수신거부 Unsubscribe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