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43 종합 출판사 시공사의 예술, 교양 분야 도서를 발간하는 시공아트의 뉴스레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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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산업에도 다양한 흐름이 존재합니다. 대형, 중형, 소형 규모의 출판사는 물론 1인의 이름으로 당당히 운영 중인 곳도 많지요. 이 중에는 새롭고 자유로운 발상을 구현하는 독립출판도 있습니다. 11월의 시아는 이들이 모여 해마다 여는 축제의 장에 다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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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련한 행사장을 찾을 때면 '아직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느껴집니다. 읽는 행복이 곁으로 조금씩 번져 나가길 바라며 독서삼매경에 빠진 고영이(🐱)를 표현해 주셨습니다. 시아가 오래 애정한 그림 중 하나랍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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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actually is all arou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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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의 플레이리스트, 손끝의 낙서, 푹 빠진 책과 영화...
예술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시아가 만난 사람들과 함께 '취미로서의 예술'을 생각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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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탈출)은 나에게 취미로서의 예술이다
: 저는 2010년대 초중반, 국내에 방 탈출 카페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꾸준히,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테마에 도전해오고 있습니다. 단순 개수로만 따져본다면 지금까지 대략 50여 개의 방에 도전했습니다. 성공률을 물으신다면…… 직원분들이 종종 꺼내주시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방 탈출이라는 단어와 예술이라는 단어 사이에 거리가 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밀폐된 공간을 벗어나는 게임 정도로 생각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 탈출은 굉장히 다양한 예술 장르가 혼합된 종합 예술입니다. 가장 비슷한 매체는 연극이라고 생각하는데, 말하자면 참여형 연극인 것 같아요. 최대한 현실과 유사하게 꾸며진 무대 미술, 직접 인물이 되어(혹은 조력자가 되어) 상황에 개입하는 서사적 몰입도, 시간과 동선을 한정하면서 플레이어를 배치하는 연출적 요소들, 적재적소에 편성된 효과음과 배경음까지. 지금 당장 떠오르는 작품 중 느낌이 가장 비슷한 작품은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 모독》 정도가 있겠네요. 관객의 반응이 곧 이야기의 흐름이 되고 그들이 극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연출자가 의도한 방향으로 서사가 흘러가게 된다는 점이 특히 비슷합니다.
50여 개의 방이라고 하면 들으시는 분이 어떤 느낌을 받으실지 궁금합니다. 많다고 느끼실지, 적다고 느끼실지, 별생각이 없으실지, 한심하게 느껴지실지. 그래도 한 번 빠지면 굉장히 건전하고 즐길 거리가 많은 취미라고 생각해요.
해본 방 탈출 중에는 너무 재미있는 방도 있었고 더럽게 재미없는 방도 있었는데요. 어찌 됐든 돌이켜보면 웃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꼈네요. 그러니까 단순히 방 50여 개가 아니라 50여 가지의 감정을 지나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언가가 인간에게 감정의 촉매가 되어줄 수 있다면 거기에는 예술적 사유가 개입할 충분한 틈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이 취미는 나를 (협동)하게 만든다
: 저는 주로 혼자서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더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첫 기억이 시작되는 지점부터는 꾸준히 그랬던 것 같아요. 소통은 어렵기도 하고,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일처럼 느껴져요. 공동 작업물은 온전히 제 의도만으로 만들 수 없다는 점도 제 성향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방 탈출은, 물론 솔로 플레이도 가능하고 솔로 플레이만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한테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같이 하는 게 더 재밌기도 하고요. 방 탈출을 할 때면 공동의 목표(탈출)를 가지고 협동하는 것이 즐겁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에게도 최소한의 사회성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해요.
뭐든 가능하다면 (탈출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 방 탈출은 방식이나 트릭이 복잡할 순 있지만, 사실 공통적인 룰 자체는 굉장히 단순해요. 방에 들어가면 탈출해야 한다는 목표가 생깁니다. 탈출하지 못하면 실패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어떤 방은 구성이나 미술적으로 너무 완성도가 높고, 심지어 갇혀 있는데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런 방에서는 탈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신촌 마스터키의 〈화이트룸〉이라는 테마가 떠오르네요. 눈을 가리고 방에 입장한 후, 안대를 벗으면 눈이 시릴 정도로 사방이 새하얀 방에 플레이어가 덩그러니 놓이게 되는데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결국 비싼 돈 주고 게임을 하러 왔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탈출하긴 했지만, 정말 나가고 싶지 않았던 방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일행들끼리도 비슷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요즘은 탈출이 대세잖아요. 너도나도 탈조선이란 유행어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집도 탈출하고 학교도 탈출하고 회사도 탈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저는 아닙니다? 충성 충성).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웃고 넘기지만, 사실은 되게 슬픈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있는 거기, 처해 있는 상황이 힘드니까 탈출하고 싶은 거잖아요. 머무는 편이 훨씬 안정적이지만 내가 건강하고, 안전하고, 안녕하려면 탈출하는 게 더 나으니까.
그래서 저는 탈출할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어요. 내가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하고 안녕한 사람. 안정보다는 안전이 더 중요한 사람이요.
그리고 방 탈출 예약이 정말 빡세거든요. 체감상 유명 뮤지션의 콘서트 자리 잡는 것보다 더 빡세요. 소소하게는 예약을 잘 하는 금손이 되고 싶기도 해요.
내 취미 속 최애는 지금 (<제로>)이다
: 강남에 제로월드라는 방 탈출 업체가 있는데요. 〈제로〉는 거기 있는 테마 이름입니다. 우선 미성년자분들은 입장할 수 없는 테마이니 어른이 되면 꼭 도전해보세요.
제가 공포/스릴러 테마를 정말 싫어하고…… 증오하는 쪽에 가까운데요. 〈제로〉는 장르적인 불호에도 불구하고 제가 플레이해본 모든 테마 중에 원탑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해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모든 방 탈출은 입장하기 전에 꼭 작성합니다) 내부에 실제 배우를 섭외해서 NPC로 활용한 스릴러 테마입니다. 120분 제한으로 시간이 긴 편인데도 문제가 워낙 많고 또 쫄깃한 상황이 계속 이어져서 힌트를 때려 붓고 겨우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금액이 문제인데, 1인 6만 원씩 4인 기준 24만 원입니다. 물론 비싸다고 느껴지실 수 있고, 실제로도 아주 비싼 편에 속하지만, 연출이나 구성, 내부 인테리어가 너무 압도적으로 뛰어나서 저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난이도도 그렇고 비용도 그렇고, 입문용으로 추천할 테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방 탈출을 플레이해보신 분이라면 정말 강력하게 추천해드리는 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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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언리미티드 북페어에 다녀왔습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언리미티드 북페어는 독립서점 책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곳입니다. 제작에 자유도가 높은 만큼, 시중에선 보기 힘든 독특한 주제와 다양한 모양의 실험적인 책들이 많습니다. 눈도 마음도 즐거운 책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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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처럼 북페어에 구경을 갑니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매대 앞에 서서 (용기를 내어) "이건 무슨 책이에요?, 책 설명 들을 수 있나요?"라고 여쭤봅니다. 나와계시는 분들 대부분이 책을 만든 장본인(작가 혹은 편집자)인 경우가 많아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죠. 다들 "아, 이건 말이죠~" 하고 하나같이 웃으면서 대답해 주십니다. 설명을 듣다 보면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책이 있나!' 싶습니다. 만든 이의 애정이 한가득 담긴 책은 재미가 없을 수 없습니다!
북페어는 순식간에 지갑이 털리는 아주 무서운 곳입니다. (작년에는 폐장 20분 전에 7만 원을 쓴 전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꼭 친구와 동행해 다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크게 효과가 있는 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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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폭스프레스'에서는 미국 요리책 표지 모음집을 샀습니다. 사장님이 1960년대 미국을 정말 좋아하셔서 그 당시의 물건과 사진과 책들을 직접 사 모으신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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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하는 '작업실유령'. '워크룸 프레스'와 연계된 출판사입니다. 신간이 나왔다고 하여 바로 구매! '문예 비창작'이라는 책을 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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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북스'는 동화책 전문 출판사입니다. 책 판형도 특이하고, 삽화도 다양하고, 내용도 하나같이 좋아서 눈독들이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재정 한계로 못 샀는데... 언젠가 전부 소장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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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페어에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습니다. 책 읽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 같아 슬픈 이 시기에 참 따뜻하고 위로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독립 서적의 매력이 널리 널리 알려져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번에 책 네 권 샀는데 가뿐하게 십만 원 넘었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절제한 것이기 때문..ㅠㅠ 책 살 돈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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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
<불멸의 목소리>
: 남성 성악가편
유형종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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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로티는 본질적으로 리릭 테너지만 성량이 대단히 우렁차고 남성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어딘지 가냘픈 그 이전의 리리코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358쪽, '루치아노 파바로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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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독립출판 도서와 아트북을 만날 수 있는 2023 《언리미티드 에디션_서울 아트북 페어》. 함께 일하는 고마운 분이 즐겨 참석하는 행사라고 추천해 주셔서 처음 접했습니다. 왜 무제한이라는 표현이 들어갈까요. 독립출판물 같은 한정 수량은 단순히 '리미티드 에디션'이 아닌가 싶었는데, 어쩌면 어떤 제한도 없는 자유로운 시도가 가능하다는 의도일까 짐작해 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름부터 흥미롭네요.
퇴근길에 빗속의 긴 경로를 거쳐 현장에 방문했습니다. 저는 처음 가본 행사였는데요. 책을 사랑하고 즐기는 방법은 이토록 다양하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국내외 다양한 주체들이 참가했습니다. 넓은 미술관 층층 소소하게 차린 부스마다 각자의 손끝에서 정성스레 나온 다양한 형태의 책, 여러 지류 상품이 놓여 있었습니다. 독특한 질감도, 단박에 눈길을 끄는 화려한 색감도, 아주 크거나 작은 판형도, 서점에서 늘상 접하던 책들과 퍽 다른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 다양성 자체가 주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멋졌습니다. 책을 구경하며 맘에 드는 귀여운 명함과 스티커 몇 개를 얻기도 하고 짧은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다음 해 낼 신간에 응용하고 싶은 작은 굿즈도 구입했습니다. 정말 다루고 싶은 내용을 책이라는 형태로 맘껏 펼쳐낸 듯 보여 순간 부러운 감정도 고여들었습니다. 동시에 재생산 가능한 수익 구조를 갖춘 비율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지면서 현실로 한순간 돌아와버렸습니다. 한 매대에 의외로 기성 출판사 책이 눈에 띄어 물어보니 해당 출판사의 계열 브랜드라 했습니다.
귀갓길에도 어둑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쏟아졌습니다. 젖어드는 노랑, 주황 낙엽을 보며 걷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작고 구체적인, 내밀한 관심사들이 그대로 펼쳐지는 기획이라면 사실 독립출판만의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시청률 지표 자체가 바뀐 영상 산업이 그러하듯이, 매체가 희귀하던 시절처럼 단일한 콘텐츠가 전 국민적으로 선택을 받는 식은 이미 과거지사니까요. 개개인의 지향에 맞는 기획에, 거기에 적합한 독자층이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이미 출판의 현실이고, 책의 미래도 그렇게 이어지리라 생각해 봅니다.
살면서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을 꼽으라면 서점, 도서관처럼 책과 함께인 공간이 제게는 상위에 있습니다. 주변에도 탐독의 유년을 보낸 수많은 동료들이 있지요. 사랑하던 무언가를 업으로 삼는 꿈을 이룬 것, 여전히 쉽지 않으나 하루씩 연명하고 있음은 어쨌거나 신기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오래 준비한 책과 그림, 소품을 조그만 매대에 쌓아두고 방문객들을 맞이하던 그 현장의 분들과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수면 아래 물갈퀴를 있는 힘껏 저어야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완성됩니다. 제지 가격이 또 다시 오른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소중한 나무로 만든 종이가, 그리고 모든 소중한 이들의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고심하여 담은 정성을 만나 주실 분들께 하루씩 열심히 다가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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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편지를 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단 한 번뿐인 "오늘들", 신년의 각오처럼 하루하루 꼭 잡아보아요.
시아레터는 곧 한동안 쉬어 가며 재정비할 예정인데요.
다음 호가 그 쉼표 전에 발행하는 마지막 호일 듯합니다.
12월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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