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믿는 수밖에 없겠지요(You Must Believe in Spring) 빌 에번스(1980, 워너 뮤직)
장성주(출판 번역자) 해가 바뀌면 사태가 다 끝날 줄 알았던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뜬금없이 서두를 열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다들 알아듣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 증거 아닐까. 백신이 마침내 만들어지면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실제로는 내가 접종받을 날이 언제 올지조차 알 수가 없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가 끝나는 날은 과연 올까. 가뜩이나 조촐한 인간관계를 이어온 프리랜서 출판 노동자로서, 언젠가 모여도 되는 날이 왔을 때 모일 지인이 남아 있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마저 드는 요즘이다. 그래도 시간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흘러 봄이 된 것을 느낄 때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괜스레 억울한 마음도 들지만, 이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게 원래 내 뜻하고는 상관없는 일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찾아든다. 그런 깨달음을 소리로 표현한 것만 같은 곡이 바로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번스의 「봄을 믿는 수밖에 없겠지요」이다. 1977년에 녹음하여 1980년에 발매된 동명의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원래 프랑스 작곡가 미셸 르그랑의 작품으로, 뮤지컬 영화 「로슈포르의 숙녀들」에 처음 쓰였다. 젊은 수병이 자신의 이상형을 이야기하는 귀엽고 발랄한 내용의 이 노래가 빌 에번스의 앨범에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연주된다.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만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트리오의 협연은 잔잔하면서도 우수 어린 피아노 독주로 시작되었다가, 1분 40초 정도 지났을 무렵 갑작스레 베이스 연주가 전면에 나선다. 보통은 저음부를 받쳐 주는 역할에 머무는 베이스가 주연을 맡아 들려주는 현의 마찰음은 어딘가 남의 귀에 닿을세라 나지막이 읊조리는 기도 소리를 닮았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듣다 보면 봄노래가 꼭 흥겹고 희망차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 ‘그해 봄은 유난히 조용하게 보냈지’라고 회고할 날이 오리라는 생각도 함께. 작사가인 앨런 버그먼과 메릴린 버그먼 부부는 미셸 르그랑의 원곡 노랫말을 영어로 번안하며 마지막 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2021년 봄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노랫말 같아 여기에 적어 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