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기 꺼려지는 시점이지만 건축가로서 날씨 좋은 5월에 한 번쯤 직접 가 볼 만한 건물을 추천하고 싶다. 건축가들에게 서울의 대표 건물이 무엇일까를 물어보면 수많은 아름다운 건물의 이름들이 나오겠지만, 나에게 물어본다면 신용산역에 있는 아모레 퍼시픽 본사를 최고의 건축으로 꼽고 싶다.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의 말처럼 멀리서 보면 무심한 듯 서 있는 거대한 입방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보이는 들쭉날쭉한 알루미늄 ‘루버’가 입면의 섬세함을 더하면서 슬래브와 유리의 구분을 흐리며 전체가 한 덩어리임을 강조한다. 언뜻 보기엔 직육면체 박스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볼륨이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커지는 매스는, 서로 다른 덩어리들이 마치 달항아리를 닮은 모습으로 쌓여 있는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도 건물의 중간에 커다랗게 뚫린 세 군데 오프닝을 통해 답답함을 덜어 준다. 지상층에 있는 2개 층의 아트리움은 공공의 성격을 가진 공간으로 모든 방향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도록 했다. 개인 기업의 사옥임에도 불구하고 저층부를 과감하게 오픈하여 누구나 둘러볼 수 있도록 한 점이 놀랍다. 홀에 보이는 에스컬레이터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바닥의 콘크리트와 자연스럽게 이어져 천장과 벽, 바닥이 하나로 연결된 느낌을 만든다. 재료의 종류를 최소화하고 모든 부분이 하나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디테일이 놀랍다. 일반인들에게 접근이 제한된 공간이지만 위층에 자리 잡은 중정과 휴게 공간에서 직원들은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편안하게 소통하고 휴식할 수 있다. 중정의 조경은 반사풀과 나무 하나에서부터 흙과 돌이 만나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처리되었다. 도심을 향해 열린 세 개의 오프닝은 도시뿐만 아니라 저 멀리 산의 풍경을 담는 창문이자 틀이다. 모든 걸 떠나 아모레 사옥은 아름답다. 별다른 약속이 없다면 날씨 좋은 주말에 지하의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고 1층에 앉아 잠시나마 좋은 건축을 눈과 몸으로 즐기는 호사를 누리는 시간을 갖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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