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시아레터가 도착했습니다. 종합 출판사 시공사의 예술, 교양 분야 도서를 발간하는 시공아트의 '뉴스레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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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화 전공자가 읽은 『중세』 이희수(성공회대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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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중세는 길고도 어두웠다. 신의 근엄한 목소리만 존재하고 인간의 합리적 판단이나 과학적 이성은 발붙일 틈이 없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을 오염시키는 비신앙적 도전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세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한 ‘중세’ 시리즈를 읽고 이런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는 도발적인 화두로 시작된 이 작업으로 악마가 득실거리는 시대가 아니라 적어도 건강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고전과 과학, 예술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시기로 중세를 탈바꿈시켜 놓았다. 왜곡된 이미지와 세뇌된 관념을 실증적으로 해부하고, 다양한 전문가들에 의해 중세라는 실체를 새롭게 조망해 주었다. 특히 『중세 3』이 담고 있는 1200년에서 1400년에 이르는 기간은 고대 로마제국이나 르네상스 시대를 뛰어넘는 지적 담론이 난무했고, 인간 중심의 사고 체계가 뿌리내리는 시기였음을 새롭게 발견한 것도 이 책에서 얻은 큰 수확이다. 이 책에 따르면 끔찍한 화형과 더불어 마녀사냥이 극성을 부리던 때는 오히려 15-16세기 르네상스 시기였다는 것도 충격이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생명을 위협당하고 파문 재판을 하던 때가 1633년이니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에코가 새롭게 조망하려고 했던 ‘중세’도 유럽 중심의 시각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석학이었던 그도 태생적으로 유럽인이었고 라틴 문화 우월론자였다. 기독교 세계의 인식 틀을 깨기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의 글에서 일관되게 라틴 유럽 문화는 ‘우리’로 표현되었다. 그의 미학적 관념을 그대로 옮기자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청록색 눈동자, 장밋빛 피부, 눈처럼 하얀 얼굴, 황금빛 색채”로 표준화되었다. 중세 최고의 신학자로 이슬람포비아를 주창했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와 철학을 박사 학 주제로 연구한 것도 에코가 가지는 인식의 한계로 작동하고 있다. 그에게 중세는 로마가 멸망하는 476년부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는 1492년까지로, 1016년의 긴 기간이다. 한편 비잔티움 역사에서 보자면 중세의 시작은 476년으로 대체로 동일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이 정복당하고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1453년을 중세의 끝으로 본다. 중세를 977년간으로 보면 근대의 시작이 동방에서 39년이나 빨리 시작되는 셈이다. 무엇보다 1천 년이란 유럽의 긴 중세를 읽어 가면서 동시대를 공존했던 이슬람 세계가 이룩한 과학과 문명, 예술과 거버넌스를 비교할 수 있었고, 인류 역사와 문명의 흐름을 보다 균형 있고 통찰력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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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수백 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중세의 결정판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암흑기라는 표현에서 끝없는 공포, 광신주의와 이교에 대한 편협성, 역병,빈곤과 대량 학살로 인한 문화적이고 물질적인 쇠퇴기를 떠올린다면…… 이는 부분적으로만 적용할 수 있다.그 시대가 남긴 유산 대부분을 우리는 아직도 사용한다…….우리가 우리 시대의 것인 것처럼 아직도 사용하는 중세의 발명품은 끝이 없다.”-움베르토 에코, 전체 서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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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써 주신 이희수 선생님은 중세 학교 네 번째 강의 " 1453, 콘스탄티노플 혹은 이스탄불"을 진행해 주셨습니다. 역사와 중세에 관심 많은 많은 이들의 감탄과 열정이 느껴졌던 시간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이희수 선생님의 이슬람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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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엄마의 역할은 작가의 생존과 번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여성, 엄마, 예술가. 서로 다른 세 가지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11명의 이야기 - 여성 미술의 담론 외에도 여성의 자아, 연대, 그리고 역사까지 들여다보는 책 여성이면서 엄마이고, 동시에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열한 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독자들은 여성의 경력 단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결혼’과 ‘엄마’의 역할이 어떻게 작가들의 활동과 연관되는지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 실린 생생하고 솔직한 경험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그리고 세대를 아우르는 연대는 우리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위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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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사는 여러 나라의 젊은 남자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 나누었던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 출연진들의 인기 이상으로 토론 주제들도 흥미로웠다. 그중 아나운서 박지윤이 출연했던 화는 여전히 기억에 남는데(2014년 10월 13일 방영), “일도 아이도 포기 못하는 나, 정상인가 vs 비정상인가?”가 주제였다. 출연진들은 ‘정상이다’와 ‘비정상이다’로 나뉘어 토론을 벌였다. 미국 대표였던 타일러는 “만약 박지윤 씨가 남자라면, 이 문제를 비정상으로 생각할까? 남자에겐 ‘욕심이다’라고 하지 않는다. 여자에게만 선택지가 주어진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라고 일갈했다. 박지윤조차 “남편이 육아를 많이 ‘도와’주지만”이라고 말하는 데서 얼마나 오래 고착된 이야기인지를 알 수 있다. 8년이 지났다. 그사이 ‘미투’를 비롯하여 성역할과 성평등에 관해 ‘광풍’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여러 사건이 벌어졌지만 과연 얼마나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이 책이 쓰이지 않았을까? 『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가 바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성, 엄마, 예술가. (예술가는 학생, 직장인 등 다른 타이틀로 바꿀 수 있다.) 전부가 분명 ‘나’임에도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당한다. 내가 나를 포기할 수 없는데….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영 잃어버릴 것 같은 초조함. 인터뷰이로 참여한 80대 원로 작가들부터 한창 육아 현장에서 고군분투 중인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4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하나로 연결된 듯한 기분이다. 여전한 문제들과 바뀐 생각들. 역시 여성, 엄마, 예술가인 두 저자는 개인에서 우리로, 사회로 논의와 사고를 확장시켜 나간다. (저자 두 명까지) 열세 명의 그녀들이 대신 써 준 우리의 흔적이 책에 녹아 있다. 넘치는 이야기에 어쩔 수 없이 분량을 줄여야 했다. 아쉬움이 컸을 텐데 기꺼이 허락해 준 두 저자에게 감사를 전한다. 편집자도 아쉬운 마음이다.
- 에디터 honeyp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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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고동연, 고윤정 / [대화] 국동완, 김시하, 사공토크, 정정엽 / [진행] 심연정 [장소 및 시간] 2022. 5. 14.(토) 16:30 - 18:30 예술청(서울시 종로구 동숭길 122) [디자인] 진달래&박우혁 / [주관] 사가 / [후원] 예술청, (주)시공사
여성, 엄마, 예술가라는 세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이들은 드물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여성 작가는 경력을 위해 결혼을 늦추거나 육아와 가정을 위해 작업을 중단하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열한 명의 예술가는 ‘한국 여성 미술’의 시작을 함께했거나 여성 미술의 태동을 목격한, 혹은 지금 치열하게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는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고 있다. 기억과 경험으로 쌓아올린 이들의 대화 안에서 우리는 세 가지 정체성을 유지하는 여성 작가의 전략과 전술을, 그리고 다른 삶의 형태를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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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즐거운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고궁 같은 곳에 들어서면 훅 순간이동할 때가 있다. 굴속으로 떨어진 앨리스가 갑자기 마주한 다른 세상처럼, 바쁜 도심 속 현실에 쫓기던 눈앞에 한결 여유로운 시공간이 펼쳐진다. 특유의 탁 트인 시야, 새하얀 벽과 높은 층고, 특히 관람객이 드문 시간에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노라면 꽤 근사한 특권을 누리는 느낌마저 든다. 오래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관람 후 관내 셔틀버스를 타고 과천관까지 방문했던 날, 미리 점찍어둔
작품들을 직접 본 것도 그렇지만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그 한적하고 너른 뜰에 앉아 쉬던 순간이 오래도록 기분 좋은 여운을 남겼다. 전시장 규모가 큰 곳은 큰 대로, 작은 곳은 작은 대로 저마다의 개성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보물찾기 하듯 골목을 돌아돌아 만난 작은 갤러리, 그곳에 선별되어 걸린 작품들이 주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같은 곳은 대형 미술관이 아닌데 과거 회현동에 있던 벨기에 영사관 건물을 지금의 사당역 근처로 옮겨와 보수하였기에 독특한 공간감을 주는 당대 양식과 흔적이 엿보인다.
널리 입소문 난 전시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다이내믹한 체험이 된다. 과거
데이비드 호크니, 파블로 피카소 등의 유료 전시에서는 문 열기 전부터 예약 내역을 들고 긴 줄을 섰고 발 딛을 틈 없이 빼곡한 인파를 따라 먼
발치에서 작품을 보았다. 인기 도슨트 해설을 신청해 본 분들도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우르르 전시장 안을 누빈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유유자적함과는 다른 양상의 감상 기회이니 관심과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겠다. 현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 작가의 유고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근 김종영미술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가 있는 평창동에 자리한 곳으로 입구 뜰 나무 사이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렸다. 회의 후 감사하게도 친절한 안내 속에 《불각(不刻), 상(象)을 조각하기》 전시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3월부터 시작된 해당 전시는 곧 막을 내리지만 이후에도 새로운 전시가 이어질 터이니
기회를 만들어 들러보시길 추천드린다. 작가의 손길을 품은 서예, 드로잉, 조각작품들을 직접 대면하는 즐거움과 함께, 선생의 생가에 있는 ‘사미루’를 본따 이름한 카페에서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맛있는 차도
즐길 수 있다.
- 에디터 pe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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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작품을 더 만나고자 하는 분들께는 서울시립미술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전시도 소개하고 싶다. 미술 교과서에
실렸던 <지원의 얼굴>을 비롯해 권진규 작가의
다채로운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입체적인 조각작품 위주의 전시를 본 기회가 드물었는데 다른 회화나
미디어 설치 작품 전시 등과는 또 다른 감응이 있었다. 전시 초인 3월
퇴근길에 들렀을 때 저녁 시간임에도 꽤 많은 관람객이 있었다. 이제 폐막을 열흘 남짓 남겨두었으니 기간
내에 걸음해 보셔도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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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성동구 상원1길 22 북스사업본부 예술교양팀 (시공사 출판사) sialetter@sigong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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