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34
종합 출판사 시공사의 예술, 교양 분야 도서를 발간하는 시공아트의 뉴스레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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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안 <고사관수도>(부분) 15세기, 종이에 담채, 23.4×15.7cm,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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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인재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에서 압권은 아무래도 선비의 얼굴 표정에 있다. 바위의 속성이란 것이 거칠고 차가울 수밖에 없는데도, 선비는 마치 부드럽고 따스한 솜 위에라도 엎드린 것처럼 아주 편안한 자세로 두 팔에 턱을 괴고 무념무상의 세계에 빠진 듯한 미소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수면을 바라보는 선비의 평온한 표정에 마음이 홀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차 한 잔 들고 작품과 마주하자니, 왠지 인생사의 모든 시름이 저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것만 같다.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시공아트, 본문 41쪽, 이일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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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일기#1
국립현대미술관(서울)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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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주>, 2022, 폐종이박스, 금속 재료, 기계장치, 전자장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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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궤(櫃), 기계가 구동되면 수많은 노(櫓)가 일제히 움직입니다. 기계의 군무는 흔들리는 방주, 파도, 가오리의 날개처럼 보입니다. 최우람의 <작은 방주>는 폐종이박스와 기계 장치를 사용하여 거대한 방주의 움직임을 구현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전시장 내의 다양한 설치물들과 어우러지며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전시장을 한번 둘러보실까요? 방주 위에는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두 선장>이 타 있습니다. 선장의 뒤에는 <제임스 웹>이 있고, 그 뒤로 <등대>가 솟아 있습니다. 한 선장의 앞에는 ‘끝없이 문이 열리는’ <출구>라는 작품이, 다른 선장 앞에는 ‘마주 보는 거울 속에 펼쳐지는’ <무한 공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벽면에는 금빛으로 빛나지만 축 늘어진 <천사>가, 배에서 끊어진 채 벽에 박혀있는 <닻>이 있습니다.
작품들은 ‘우주’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2021년 나사(NASA)에서 쏘아 올린 차세대 우주 관측기구이죠. 제임스 웹은 우리가 이제껏 보지 못한 태초의 시간들을 찍어 보낼 것입니다. 우리는 더 먼 가능성을 바라보고 선택을 해야겠죠. 두 선장은 하나의 방주를 타고 우주를 유영하기 시작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떠났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등대는 길잡이, 목적지를 나타냅니다. 두 선장은 서로가 옳다 생각하는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가리키는 곳은 ‘무한’한 이미지로 서로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손끝의 방향 때문에 서로의 힘이 반대로 작용합니다. 방주는 제자리에서 흔들릴 뿐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없습니다. 쉴 새 없는 파동 위에 존재하듯이 말이죠. 이 의미 없는 항해를 멈추고 싶어도 정박할 수 있는 닻은 끊어져 있습니다. 천사는 의지를 잃고 늘어져 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협력만이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메시지를 우주라는 공간에서 풀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몇 년 전부터 ‘다정함’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생존 법칙으로 이해해 왔으나, 세상을 움직이게 한 것은 ‘협력’ 그리고 ‘다정’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적 여부를 따지기 전에 주목할 것은, 우리에게 ‘다정’이라는 말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양극화가 심해지고 혐오로 점철된 세상에서 관계와 애정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서였겠죠.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은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만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의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선장은 갈등 가운에 멈춰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이야기를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주에 올라갔던 사람들은 지구에 대한 깊은 애착과 초연함을 경험한다고 하죠. 인류의 경계가 나라나 인종이나 성별이 아닌 우주적 관점에서 느껴진다는 겁니다. 두 선장에게 ‘우리’의 울타리가 넓어진다면 둘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어느 쪽이든, 결국 둘이 원하는 ‘무한’으로 향하게 될 테니까요.
-에디터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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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일기#2
장 줄리앙 전시 ㅡThen, Th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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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장난꾸러기 막내였던 유년의 나는 낙서쟁이였다. 어느 날 스케치북을 벗어나 방 안에서 벽지 위 작은 동그라미로 시작한 연필 그림은 며칠 간격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멕시코 모자를 그렸다가 다음 날엔 거기에 몸과 다리를 그려 치마를 입은 사람으로 둔갑시키고 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점점 커지다 한 벽을 가득 채워 버린 어설픈 벽화를 눈감아 주신 어른들의 아량이 놀랍다. 지금의 나는 어린 조카들이 벽에 그림을 시작하면 당장 만류할 것 같은데. 아님 마침 새로 도배할 시기였던 걸까. 그런 전과(?)는 오랜 세월에 묻어 버린 성인으로 살아가다가 우연히 본 뱅크시의 작품에 훅 매료되었던 게 어쩌면 일종의 대리만족이었나 싶다. 거리 벽을 캔버스 삼은, 글 없이 전 세계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유머, 현실과 기득권을 비트는 풍자, 작가 본인의 정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경매 중인 본인 작품에 장치를 달아 파쇄를 시도하는 등 통념을 넘는 발칙한 쾌감이다.
흔히 동굴에 그린 벽화들로 출발하여 살피는 미술의 역사. 창작의 욕구는 인류의 본능이라 할 테다. 그러니 디지털 시대에도 '손그림'이 주는 정서는 여전히 통하는 것 같다. 어쩌면 각종 최신 툴로도 그 안에 아날로그 감성, 인간적인 느낌을 구현하는 일이 더 중요해 졌는지 모른다. 동그라미, 네모 안에 찍힌 점 몇 개는 마법을 부린다. 인간의 뇌는 즉각 그 점들을 '눈, 코, 입'으로 인지하며 인격화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오래전 무인도에서의 생존기를 다룬 <캐스트어웨이>라는 영화에서는, 배구공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눈코입을 만들자 윌슨이란 새로운 친구로 부르게 된 장면도 있었다. 힘찬 색색의 면에 몇몇 점이 모여 이룬 형상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모바일 메신저에서 자주 만나는 이모티콘들은 극히 단순한 형태로도 대화에 말랑말랑한 여유를 준다. 연말에 추천을 받아 둘러보게 된 장 줄리앙의 전시는 일상 속 그러한 유쾌함이 되기에 충분했다.
입구부터 오렌지색 바탕의 얼굴이 입장객을 맞았다. 서울 시내 버스 정류장 곳곳에 본 전시 포스터로도 친숙한 모습이었다. 연속 재생 중인 영상에서는 작가가 직접 전시장 벽에 마커로 작업 중이다. 바로 눈앞의 이 그림이구나 알 수 있어 더 주목해 보게 되었다. 그의 인물화를 보다 작년에 돌아가신 작가 장 자크 샹페의 따뜻한 그림체를 잠시 떠올리기도 했다. 종이 인형처럼 여러 인물들을 표현한 작품도 흥미로웠는데 뒷면까지 표현된 것이 재밌었다. 손으로 그린 듯한 수많은 그림 한 장 한 장으로 큰 벽에 모자이크를 이룬 공간에서도 셔터를 연이어 누르게 되었다. 움직이는 설치 미술품과 그의 일러스트가 포함된 출간물 등 다양한 매체도 있었다. 잠시나마 내면의 낙서 본능을 달랜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설 이 전시는 이제 한 주간 남짓 남았다. 1월 24일까지 DDP에서 만날 수 있다.
-에디터 pe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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