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35 종합 출판사 시공사의 예술, 교양 분야 도서를 발간하는 시공아트의 뉴스레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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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쇠라, <저녁, 옹플뢰르>, 1886년, 채색된 나무 프레임 캔버스에 유채, 78.3×94cm, 현대 미술관, 뉴욕
"적어도 25개의 색조로 구성된 수천 개의 점들이 머릿속에서 혼합되고 시각적으로 섞여, 한 비평가가 '빛의 회색 먼지'라고 불렀던 것이 되었다. 쇠라의 먼지처럼 흐릿한 환영은 빛을 발한다."
- 232쪽, 『컬러 오브 아트』, 스텔라 폴 지음, 이연식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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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穩全한 위로 이수경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 전시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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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도공에게 버려진 도자 조각들을 금으로 이어 붙여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낸 작품들이었습니다.
이 전시의 작품들은 중국의 '용생구자(龍生九子)' 전설에서 착안했습니다. 먼 옛날 용이 아홉 아들을 낳았는데, 모습이 용이 아닌 다른 짐승들이었다고 합니다. '용의 핏줄이지만 용이 될 수 없는 존재'라는 불완전함은 도자로서는 치명적인 '깨짐'으로, 각 짐승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은 서로 다른 도기들의 '혼합'으로 표현됩니다. 이 결함은 금으로 이어 붙여져 새로운 형상을 만듭니다.
작가가 금선을 사용한 공법을 보며 일본의 '킨즈기(金継ぎ)'가 생각났습니다. 킨즈기는 찻잔이나 그릇이 깨진 부분을 금으로 이어 붙이거나 기워내는 방법입니다. 작가의 작업 방식과 킨즈기는 깨진 곳을 누락이 아닌 재생의 공간으로 생각하며, 우연과 결함을 긍정하는 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집니다. 하지만 킨즈기가 '복원'을 중시한다면, 작가의 작품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원상태를 벗어버리고 새 형태와 근본으로 '환원'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마치 거대한 알에서 깨어나오는 생명 같습니다. 금들은 알을 벗어나오기 위한 필연적인 찢어짐이며, 울룩불룩한 형태는 부풀어 오르거나 부글거리는 팽창이고, 끓어오르거나 흘러내리다시피 거칠게 사용되는 금선은 그 속의 생명력으로 말이죠. 우리는 작품을 통해 역동적인 느낌을 받게 됩니다.
용의 아홉 아들들은 그 이후 어떻게 됐을까요? 아홉 아들들은 우리의 곁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각자의 성격과 재주에 맞게 인간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습니다. 먼 곳을 바라보기 좋아하고 불을 끄는 데 재능이 있는 이문(螭吻)은 건물 지붕의 용마루에 자리를 잡습니다. 소리 지르는 걸 좋아하는 포뢰(蒲牢)는 종의 윗머리에 앉아 소리를 널리 퍼지게 해줍니다. 비희(贔屭)는 무거운 것을 짊어지길 좋아하여 비석 아랫부분에 자주 보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았고, 우리의 선조들은 그들에게 삶의 부분을 기대었습니다.
혼종, 잡종, 돌연변이. 아마 아홉 용들은 용이 될 수 없다는 운명을 알고 많이 헤맸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뤄낸 화합은 용이었다면 성취하지 못했을 것들이죠. '완벽(完璧)한 것'이었다면 만들 수 없었을 '온전(穩全)'함. 결함이 만드는 새로운 생명력과 풍성함과 다채로움을 표현한 이수경 작가의 작품이 위로로 다가오는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완벽完璧하다: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으로, 결함이 없이 완전함을 이르는 말. *온전穩全하다: 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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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년간 여러 전시를 즐기고 기록해 온 분과 최근 조우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술은 우리 일상 가까이의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몸소 누려온 그를 시아레터 기고자로 섭외하여 생각을 나눌 기회를 만들기로 했지요.
그 주인공 '에이전트 온'의 안내로 전시 현장 두 곳을 잠시 만나 보시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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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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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굵고 부드러운 그림. 아이들의 표정과 몸의 표현이 행복해 보여 좋아했던 '이중섭 작가'의 전시를 오랜 기간 기다려서 보았다.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수년간 보낸 엽서 속 그림들이 눈에 띄게 밝고 명랑하다는 게 보인다. 사랑하는 이에게 쓴 편지들은 순수한 사랑이다. 수년이 지나도 따뜻한 그 마음 그대로 느껴진다. 명랑한 그의 그림들을 보고 따뜻해져 가족들에게 보낸 문장들을 읽으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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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피 케인, 고요의 순간 (Alfie Caine Moments Ca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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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화책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알피 케인의 작품들. 잠실 에비뉴엘에서는 이렇게 영하고 팝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을 종종 선보이곤 한다. 96년생 영국 작가 알피 케인의 작품들은 더욱 특별했다. 묘하고도 비비드한 색감과 꿈속 같은 배경은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보는 듯하다. 실제로 캔버스는 직접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이 커다랗다. 동화 속에 살고 싶고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은 나에게는 현실을 벗어나게 되는 동화 속 장면이 무섭고도 매혹적이었다.
에이전트 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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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일기2
또 하나의 순간을 지나며
-그리 유기적이지 않은 생각의 파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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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선배 신혼집에 초대받아 방문한 날, 현관에 붙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깨어 있는 의식에의 추구’ 같은 것일까? 처음 본 그 말이 무척 강렬했다. 자못 의미심장해서 어린 마음에 곱씹다 보니 조금은 어렵고 멋 부린 표현 같기도 했다. 꽤 많은 세월이 흘러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을 땐 알 수 없는 두려움도 주는 말이었다. 바른 대의를 향해 나름의 방식으로 동참하던 노력은 과거에 멈춰 있고, 발등에 불 끄기에만 급급하며 일희일비하다 어느새 수년이 지났음을 자각할지도 모르니. 굳게 붙잡기로 결심했던 원칙은 이따금 되새길 필요가 있겠다. 한없이 휩쓸려만 가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첫마음'을 돌아볼 냉수 같은 한 마디로 간직하기로 한다.
동시에 그저 하루씩 살아내고 버텨내는 순간순간의 노력이야말로 더없이 고귀하다는 믿음도 있다. 평범한 우리의 나날 속에 그보다 중한 대의명분이 있을까. 그래서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고 또 하루 살아내게 한 힘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늘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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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도 업무에서도 상이한 시대와 문화를 거쳐 온 여러 삶을 만난다. 어린 날엔 픽션의 재미를 선호했지만 이제는 점점 삶의 진짜 이야기에 더 끌린다. 책이든 육성이든 그 증언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반갑고 기쁘다. 그래서 우연한 계기의 만남도, 독자로서 마주한 인상적인 삶의 기록도, 편집자로 저자·역자분들을 뵙는 기회도 무척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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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전환이 잦다. 편집 영역에만 한정해도 하루는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를 만나고, 또 하루는 일본 일러스트레이션 전문가가 설명하는 포즈 묘사의 비법을 엿보기도 한다. 출신국은 다르나 저마다 귀한 자식(?)인 이 책들이 최적기에 완성되어 어엿한 신간으로 선보이기를 고대한다. 한 장 한 장 담긴 그 글이 즐거이 열독해 주실 분들과 부디 잘 연결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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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역할로 저글링하는 가짓수가 늘면서는 일터에서 정말 잠시도 느슨할 틈이 없었다. 그 역동적인 하루하루를 많은 분들의 조력에 기대어 감사히(+간신히) 지나고 있다. 특히 투입되자마자 강도 높은(!) 과정을 최선을 다해 적응하며 멋지게 통과한 에디터 윤슬 님!! 큰 박수와 감사를 보내며 항상 내일을 위한 힘을 아껴 주시기를 부탁한다. 👍🧡 그가 종종 되뇌이는 응원의 혼잣말을 이제 곁에서 배우게 되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우리 할 수 있다!!' 😭
“우리는 단지 암, 전쟁, 불행(혹은 행복)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매시간 매순간을 만난다. 그 좋았다 나빴다 하는 모든 양태를 만나는 것이다. 최고로 좋은 시절에도 나쁜 순간들이 많고, 최악의 시절에도 좋은 순간들이 많다. 우리는 결코 소위 ‘사물 자체(the thing itself)’의 총합적인 영향을 느끼지 못한다.”
『헤아려 본 슬픔』, C.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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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시리아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무려 4만 명에 가까운 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참혹한 슬픔을 각종 보도로 접하는 현대인들. 고통의 참상을 그려낸 사진들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인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버린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20년 전 수전 손택이 남긴 메시지는 오늘도 큰 울림이다. 압도되는 재난에 직접 투입되어 긴급 구호를 펼치는 전문 단체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직접 달려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이 비극을 미디어가 비춰낸 먼곳의 뉴스로만 소비하지 않는 많은 이들이 있다. 마음 모아 성금에 참여하고 기도하며 각자의 간절함을 전하고 있다. 그 모든 진심에 숭고함이 담겨 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고통이 하루 빨리 조금씩 덜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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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 Magent 18-1750
미국 색채 연구소 팬톤이 선정한 2023년의 색은 '비바 마젠타'다. 발표된 올해의 색을 본딴 제품들이 제법 출시되던 과거의 영향력이 여전한지는 다소 의문이다. 그럼에도 해마다 어떤 색이 선택을 받을지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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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생한 자줏빛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따뜻함과 차가움 사이의 균형을 제시하고, 용감하며 두려움 없이 활기 넘치는 색상으로 낙관과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선정 이유라고 한다. 2023년이 저물 때쯤 우리 각자의 마음속을 물들인 올해의 색은 과연 어떤 빛깔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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