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The Show'인 줄 알았던 영화 《엘리멘탈》 OST의 제목은 다시 보니 'Steal The Show'였다. 쇼를 훔친다니. 직역으로 오해를 범할 뻔한 내게 친절한 파워블로거는 그것이 관심을 독차지한다는 의미의 관용구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I wouldn't mind if you steal the show라고 반복되는 후렴은 네가 세상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해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는 사랑 고백이 되겠다. 과연 웨이드다운 고백이었다.
웨이드와 앰버는 물과 불의 몸으로 각자의 세계를 살다가 만난다. 상극의 두 육체가 서로를 끌어안으면 어떻게 될까? 물은 증발하고 불은 꺼져버릴 것이다. 앰버는 가업을 물려받고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그런 앰버에게 스펀지의 물처럼 고요히 스며드는 웨이드의 사랑은 달콤하면서도 두려운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만질 수 있지 않을까? 웨이드가 용기 내어 손을 내밀 때 앰버는 망설이지만, 사랑으로 증명해 보이자는 말에 속는 셈치고 그의 손을 잡는다. 지난했던 고민이 그 순간 무색해진다. 손을 잡고 서로를 껴안아도 두 사람은 소멸하지 않고 세상에 건재한다. 투명한 웨이드와 타오르는 앰버의 몸에서 두 사람을 축복하는 하얀 증기가 폭죽처럼 피어오른다.
우리가 안 되는 이유는 백만 가지지만 나는 너를 사랑해. 웨이드의 고백은 다정한 침입자처럼 관객의 마음을 예고 없이 적신다. 그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스며들면 경직돼 있던 마음도 걷잡을 새 없이 축축해진다. 상영관의 관객들은 저마다 어둠에 잠겨 조용히 운다. 각자의 세계를 살다 온 이름 모를 사람들이 스크린 앞에만 모이면 하나의 장면으로 동시에 눈물을 흘린다. 기적 같은 순간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표정으로 다시 씩씩하게 상영관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나 역시 발뺌하는 얼굴을 하고 그들의 뒤를 좇는다. 어느덧 모두가 웨이드의 사랑론을 맹신하는 교인이 되어 있다.
영화관 밖에는 쉽게 멎지 않을 듯한 폭우가 한창이었다. 우산을 써도 어깨와 무릎, 발목에 간간이 빗물이 튀었다. 사랑은 아무리 막아 보려 해도 미처 막지 못한 틈으로 고요히 스며드는 우연이구나. 웨이드를 만난 오후여서 그런지,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바지 밑단을 적셔도 이상하게 밉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면 사랑이 다양한 형태로 내 곁을 맴돌고 있었다.
- 淵
보라쇼 강연 후기
지난 7월 8일, 교보문고에서 <썬킴의 영화로 들여다보는 역사>로 보라쇼를 진행했습니다.💜 썬킴 선생님의 실시간 강연을 듣는 건 처음이었는데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정말 재밌었습니다. 강연 앞뒤로 문아름 피아니스트분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책을 들고 돌아가시는 독자분들을 보니 뿌듯하고 신기했습니다. 자세한 후기와 사진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어요😊 참여해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부단한 시도와 천재성으로 시대를 선도한 예술가들이 있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손꼽히는 조각가 김종영(1915~1982)도 그중 하나다. 일찍이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불과 몇 명 안 되는 예술가의 한 사람(미술 평론가 이경성), “순수 조형 의지로 일관한 선구자”이자 “타고난 추상 조각가”(미술 평론가 유근준)이라 일컬어졌다.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었던 거장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관점으로 세계 속의 한국미술을 성취해 냈다. 선비에 비유되기도 하는 고결한 성품으로 창작의 길을 걸으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 일생 헌신했다. 상업적 성공이나 화려한 이목을 좇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만큼 새로이 재조명되고 깊이 연구되어야 할 여지가 많은 작가다.
선생이 남긴 유고를 선별하여 오롯이 담은 『조각가 김종영의 글과 그림』은 그의 예술 철학과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창작자를 위한 의미 있는 이정표다. 각종 기고문을 비롯한 70편에 달하는 글이 소개되며 ‘조각가로서는 탁월하고 특이한 솜씨이며 감추어진 중요한 일면을 보여준다’고 평가되는 다양한 그림도 만날 수 있다. 드로잉과 에스키스, 유화 작품은 물론 유년기부터 한학에 통달했던 그의 필체가 담긴 수목화 등 도판 80여 점을 수록했다.
세상의 이목을 끌기보다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던 선구자. 그의 내면에 품은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 세상에 다시 한번 선을 보입니다. 2005년 독자들을 만났던 유고집을 다듬고 연구 노트와 기사문 등 새로운 기록도 추가하였습니다. 조각으로 선보인 작품의 구상도(에스키스)와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을 그린 그림도 한 장 한 장 담겨 있습니다. 예스러운 문장에 담긴 메시지를 찬찬히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출간에 이르기까지 1년 여 예기치 않은 긴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동행해 주신 모든 귀한 손길에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
에디터 peace
소식
"최근 몇 년간 어린책 출판계에 등장한 가장 참신하고 영향력 있는 그림책 작가 중 하나로 누구나 꼽는 존 클라센(Jon Klanssen)은 매우 독특하고 세심하게 갈고닦은 시각적 스토리텔링 전개 방식을 통해 그림책이라는 예술 형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림책의 모든 것>(개정증보판) 54쪽
<내 모자 어디 갔을까?> 등으로 널리 알려진 존 클라센(Jon Klanssen) 그리고 <세모>, <네모>, <동그라미> 등을 쓴 맥 바넷(Mac Barnett)이 언론 인터뷰 날 시공사에 방문하였습니다. 😃 시공아트 신간 <그림책의 모든 것> 개정증보판에서 주요 작가로 소개된 페이지에 직접 사인도 받았습니다. 가까운 친구인 두 작가는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같은 책을 함께 쓰기도 했지요. 차기작에 대해 질문하니 또 다른 협업도 계획 중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친절하고 겸손했던 두 분, 인사 나눌 수 있어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시공아트도 팬으로서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