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시아레터와 잠시
"모험과 환상"으로 떠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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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에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는 없다 …
No story in English literature has intrigued me more than Lewis Carroll’s Alice in Wonderland ...
-월트 디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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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버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얻어 신비로운 체셔 고양이를 그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림: 에이전트 캔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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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영원한 모티브가 된 환상의 세계
ALICE: CURIOUSER AND CURIOUSER
한국어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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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펀딩 중💎
08. 07 ~ 0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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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밤엔 옷 입은 토끼를 본 것 같고, 또 어떤 밤엔 말 탄 기사를 본 것 같다. 눈 뜨면 휘리릭 흩어지는 꿈이 대부분이었지만, 평소 꾸던 것과 너무 달라 조각조각 기억에 남았다. 모두 이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Curiouser and Curiouser)』를 번역할 때 꾼 꿈이다.
오랫동안 앨리스를 잊고 살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라고는 디즈니 만화영화 속 파란 옷에 하얀 앞치마를 입은 금발 소녀, 팀 버튼의 영화에서 조니 뎁이 연기한 미친 모자 장수 정도였다. 루이스 캐럴의 글에 담긴 기발한 유머와 패러디도 흐릿하게 기억날 뿐이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면서 모든 것이 뚜렷해졌다. 하트 여왕, 하얀 기사, 공작부인, 애벌레, 험프티 덤프티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머릿속에 되살아났고, 캐럴의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말장난이 곱씹을수록 재미있어 혼자 킥킥거렸다. 꿈까지 꿀 정도로 앨리스 이야기에 흠뻑 빠져 지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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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런던에 자리한 V&A(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앨리스: 큐리어서 앤드 큐리어서(Alice: Curiouser and Curiouser)》 전시회가 열렸다. 그리고 이 책은 V&A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이 해당 전시를 바탕으로 ‘앨리스’라는 문화 현상을 탐구한 기록이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한 배경과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명작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문학, 미술, 영화, 연극, 패션,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앨리스가 미친 영향을 볼 수 있는 책이다.
150여 년 전에 출판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왜 이렇게 오랫동안 매혹적인 책으로 남아있는지, 캐럴의 책이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주었는지, 또 주인공 앨리스의 실제 모델인 앨리스 리델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이 아트북을 통해 알 수 있다. 앨리스가 두려움 없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원더랜드를 모험한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책 속을 신나게 모험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일러스트레이터 크리스티아나 S. 윌리엄스가 그린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삽화들이 원더랜드로의 여정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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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캐럴의 앨리스 책도 다시 읽고 참고할 자료도 찾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번역을 마치고 나니 즐거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그리고 이제는 캐럴의 책 속으로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예전엔 원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앨리스였다면 모험이 시작되지도 못했을 거라고. 시계를 보며 뛰어가는 토끼가 눈앞에 있었다면 분명히 좇아갔겠지만, 컴컴한 굴속까지 따라 들어가진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 안다. ‘원더랜드’는 앨리스처럼 용감하게 도전하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세상임을. 그리고 내게도 한 발짝 더 내디뎌볼 용기가 생겼음을.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고 엉뚱하고 기발한, 그래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공간. 현실보다 흥미진진하고 현실에서보다 큰 용기를 품게 되는 곳. 누구에게나 그런 원더랜드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체셔 고양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말해 줄래?’ 고양이가 앨리스에게, 아니 어쩌면 우리에게 대답한다.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 시공아트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번역을 마치며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사는 동안 모두 한 번쯤은 나만의 원더랜드를 만날 수 있기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품고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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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김지현 선생님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여행 콘텐츠 에디터, 출판 편집자, 홍보 담당자를 거쳐 불어 및 영어 번역가로 활동 중입니다. 옮긴 책으로 『디자이너가 꼭 알아야 할 그래픽 500』(시공아트), 『두부 Cook Book』, 『우리는 어쩌다 혼자가 되었을까?』, 『메르켈: 세계를 화해시킨 글로벌 무티』 등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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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쉴 새 없이 변하죠. 잠시 회자되다 이내 공감대는 사라지고 자취를 감춥니다. 그러니 오래도록 도무지 낡지 않는 발상은 더욱 특별하고 소중해요. 앨리스가 그러합니다. 150여 년 전에 탄생한 이 서사는 국경과 시간을 넘어 지금도 향유되고 변주됩니다. 부모 세대가 즐긴 이야기를 자녀 세대도 흥미롭게 만나고 있죠.
루이스 캐럴, 존 테니얼... 정녕 천재라 부를 만한 이들이 처음 책을 준비하던 당시는 어땠을까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될 창작임을 짐작할 수 있었을까요? 사후에 세계적 명성을 얻은 고흐의 경우와 달리 캐럴은 당대에도 많은 사랑을 받은 듯합니다. 흥미로운 능력으로 빚어 낸 신선한 콘텐츠를 다행히도 많은 이들이 일찍부터 알아보았죠. 명작의 창작 비화와 살아 있는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시공아트)는 시각과 지각을 탁월하게 충족시킵니다.
작업 초, 고유한 주제목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후 부제는 고심 끝에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였습니다. ‘Curiouser and curiouser!’은 당황한 앨리스를 보여 주고자 루이스 캐럴이 의도한 표현이기 때문이죠. 영문법에선 more and more curious가 옳다고 하네요. 영어권에서는 사전에 오를 만큼 유명한 인용구인데요. 언어 유희적 특성을 우리말에서는 즉각 인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러 판본에서 이 문장이 아주 다양하게 옮겨진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죠.
"정말로 이상하고 신기하네!" 앨리스는 소리쳤다. <직독직해로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리치바닐라출판사. 2012년
"더더 이상해져, 더더 이상해진다고!" 앨리스는 소리쳤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년
앨리스는 꽥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세상에, 어쩜 이럴 수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지경사,
"어머, 별꼴 다 보겠네!" 앨리스는 소리쳤다. <앨리스의 이상한 인문학: 동화로 풀어낸 12가지 지식 스펙트럼> 옥당 2016년
"정말 요상해지네!" 앨리스가 소리쳤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미니북) 더스토리, 2016년
앨리스는 소리를 질렀다. "점점 더 이상하는군!" (앨리스는 너무 놀라서 순간적으로 제대로 말하는 법을 잊어 버렸다.)
‘Curiouser and curiouser!’ cried Alice (she was so much surprised, that for the moment she quite forgot how to speak good English)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클래식1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클래식에서 채택한 표현이 저자의 의도와 말맛을 잘 살렸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일관성을 위해 아트북 전체에서 모든 인용구는 가능한 이 판본을 기준으로 수록하기로 하였고요. 그렇게 세밀히 맞추는 과정은 많은 정성을 요했답니다.
화제성 높은 시도로 알려진 영국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은 이 매력적인 작품을 인상적인 기획으로 연결시켰습니다. 큰 인기를 얻은 《Alice: Curiouser and Curiousers》 전은 사실 올해 국내에서 열릴 예정이었어요. 출간도 그에 맞춰 준비했었는데요. 안타깝게도 개최가 무산되면서 이 책은 환상적인 이 전시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경로가 되었습니다.
불필요한 종이 낭비를 막고 제작 완성도를 높이면서도 가독성을 잃지 않는 판형을 찾고자 고심한 초기부터, 플랜 B가 된 펀딩을 위한 여러 절차까지... 앨리스는 길고긴 모험 끝에 왔습니다. 최초 기획의 안목, 과정마다 세심히 조력해 주신 번역가 님, 지난한 과정에 마법 같은 솜씨로 힘을 주신 디자이너님, 손수 견본을 만들어 보내는 열정으로 겹겹의 컨펌 과정을 뚫어 준 해콘팀, 저의 첫 펀딩 과정에 든든히 협력해 주신 마케팅팀 등... 오늘을 있게 한 수많은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이 책을 선택하실 많은 분들께도요.
가장 먼저 한국어판을 만날 수 있는 펀딩이 진행 중입니다. 텀블벅 한정 선물과 함께 만날 수 있어요. 8월 27일(일) 마감이니 여러분, 부디 이 기회를 꼭 잡으셔요! 🙏 😃 인류를 풍성하게 해 준 환상을 거쳐 또 다른 내일을 꿈꾸는 앨리스가 기다립니다.
에디터 pe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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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2023. 05. 12 - 09.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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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프링글스 회사에서 알바를 뽑는다는 글을 올렸다. ‘게임 속 프링글스 자판기 앞에서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알바’였다. 수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저마다 프링글스와 찍은 자신을 올리며 자신이 왜 그 알바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증명하려 했다.
데런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기차 안에서 그 공고를 보았고 자신에게 딱 맞는 알바라 생각해 지원서를 넣었다. 그런데, ‘당신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 조건에 맞지 않다’는 탈락 답변을 받는다. 기분이 나빠진 그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본인은 46세의 건장한 남성이고, 날 낳은 어머님도 살아계시는데 내가 어떻게 사람이 아닐 수 있냐는 거였다. 답변을 준 이는 이렇게 말했다. ‘데런은 당신을 코딩한 사람 이름입니다. 당신은 게임 속 NPC이며, 진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 자격에 맞지 않습니다.’ 데런은 이제야 깨닫는다. 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을 가졌는지, 시간이 지나도 나이를 왜 먹지 않는지, 아침 공기의 시원함이나 사랑의 절절함을 느끼지 못했었는지 말이다. 데런은 영원히 푸른색 코트와 청바지를 만을 입고, 다다르는 곳 없는 기차에 탄 채로 살 것이다.
이 내용은 2022년 진행된 프링글스의 마케팅으로, 실제 ‘게임 속 자판기 앞에 서 있을 유저’를 뽑는 프로젝트의 광고 중 하나다. (일부는 설명을 위해 각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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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Non Player Character)는 플레이가 불가능한 캐릭터를 말한다.
게임 세상의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배치되며, 게임 내 프로그램이나 인공지능이 조종한다. NPC는 게임을 하는 유저들을 위해 배경으로 잠시 존재한다. 현실의 사람과 매우 비슷하게 생기도록 재현된 이들, 그러나 행동은 현실과 심히 다르다. 그들은 프로그램된 대로 행동을 고정해 반복한다. 이런 NPC의 재현적 한계를 주목한 작가가 있다. 《게임 사회》에 전시된 하룬 파로키의 <평행> 시리즈는 게임 내에서 가시화되지 않는 사람들을 주목하여 여러 가지 실험 영상 작품을 냈다.
- 지나가는 사람들을 폭행하는 실험: NPC들은 반격하지 않고 그대로 맞고 있다가, 넘어지다가, 도망치다가, 다시 걷는다.
- 사람을 쫓아가는 실험: 길 위의 코너를 돌면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지는데, 동일한 사람이 길 아래에서 다시 나타난다.
- 플레이어가 든 총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실험: 가게 주인이 문밖으로 도망가는데 잠시 후 다시 카운터로 돌아온다. 그러고는 총을 보고 놀라서 다시 뛰쳐나간다. 건망증이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반복된다.
- 흉기를 휘두르는 실험: 대부분의 NPC는 금방 죽는다. 스토리 진행에 필수적인 NPC는 절대 해를 입지 않는다. 그들은 고정되어 있다.
게임은 유저들의 몰입감을 위해 현실을 모방하도록 노력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의미 없는 짓을 반복하도록 구성된 사람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거나 걸어 다니는 사람들, 스토리를 위해 해를 입힐 수 있거나 없는 사람들, 사람이 죽어도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 게임 속 세상은 비어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실적이며 현실을 완전히 재현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게임의 한계가 드러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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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코놀리 <지옥으로의 하강> 위 사진 출저: 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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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작품을 더 보자. 재키 코놀리의 <지옥으로의 하강>이다. 이 작품은 폭력적이기로 유명한 게임 GTA 속 구성과 장면을 재편집한 영상이다. GTA 게임이 추구하는 범죄와 살해와 피 튀기는 순간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노을 진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 히치하이크하는 소녀, 밭일 하는 사람들, 화물을 싣고 운행하는 기차, 그 너머의 광활한 자연 풍경이 펼쳐질 뿐이다. 같은 게임에서 따온 내용이 맞나 싶다. 게임 유저가 헤집고 다니는 곳은 깽판이 벌어지지만, 게임을 구성하는 다수의 다른 부분은 평화롭고 일상적이다. 만약 게임 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NPC들은 자신들의 전부인 이 세상에서 잘 살지 않을까.
프링글스 광고와 하룬 파로키, 재키 코놀리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NPC에게 어딘가 불편하고 비윤리적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재현이 실패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NPC들을 바라볼 때 불편한 기시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장소는 현실의 어딘가와 닮았고, NPC들은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 그 불편한 지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싹해지는 지점이 있다. ‘홀로그램 우주론’이나 ‘통 속의 뇌’처럼 사고실험과 이론으로 존재하는 가능성 말이다. 인간의 외형을 가진 존재가 자유의지(라고 생각하는 코딩 프로그램)를 가지고 있고 그게 게임에서 구현이 가능하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사는 현실이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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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마술과 마법>
크리스토퍼 델 지음, 장성주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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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
연금술의 핵심 전제는 구리나 주석, 아연 같은 값싼 금속을 귀금속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물은 보통 황금이지만 현자의 돌일 때도 있다(이 경우는 ‘위대한 작업Magnum Opus’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연금술은 물질세계를 토대로 하면서도 본질은 초자연적인 변성을 꾀하는 것이다.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연금술 과정은 물질적이든 형이상학적이든, 또는 화학적이든 영적이든 간에 완성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 다. 이처럼 물질과 추상 세계를 구분하여 양쪽 모두 상징과 비유를 덧씌운 탓에 ‘연금술’이라는 개념을 곧바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본문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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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에 명성이 높았던 연금술사 유대인 마리. 오늘날 그녀의 흔적은 ‘중탕냄비bain-marie’라는 프랑스어에 남아 있는데, 원래는 그녀가 남긴 연금술 기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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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째 달 🌙
여름은 묘한 계절이다. 한낮의 뜨거움과 서늘한 밤의 정취가 교차한다. 한 해의 한가운데지만 활기찬 정점으로 삼기에는 제약이 있다. 절정인 더위와 잦은 장대비가 잠시 멈추어 가라 한다.
일정 사이엔 줄곧 걷기도 하는데 이날은 폭염에 항복해 시원한 카페에서 책을 폈다. 아주 가끔 구입하는 장르인 에세이. 한동안 바빠 펴볼 틈도 내지 못한 게 아쉬워 부러 챙긴 날이었다. 두 권 다 우연히도 암 투병과 연관되었다. 한국인 어머니와 사별한 딸이 쓴 『H마트에서 울다』(미셸 자우너 지음), 그리고 지난 3월 별세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유고집 첫머리의 인용구는 이랬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영화 <마지막 사랑>(1990) 속 대사라는데 책 제목도 여기서 비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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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 몇 차례 일어날까 말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류이치 사카모토,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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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를 연상시키는 시각이다. 꽃과 촛불, 펜, 모래시계나 해골 같은 여러 사물이 가득 그려진 그림을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욕망이나 지성, 화려한 시절에 대한 상징물 곁에 한정된 시간, 시들고 마는 숙명을 환기시키는 소재를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 현재를 붙잡으라 당부하는 ‘카르페 디엠’에도 가닿는다.
다른 삶의 편린을 확인하며 식은 커피 잔을 내려놓는다. 날이 갈수록 커져 가는 시간의 격차.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없는 우리에게 최선은 무엇인가. 막연히 꿈꾸던 기점도 통과하고 나면 ‘한때 그랬던 것’이 되어 있지 않은지. 바쁘게 달리다 생의 유한함을 목도할 땐 살짝 차분해지기도 한다. 잔뜩 들어가던 힘은 풀리고 우선순위가 새로 매겨진다.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은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자고 다짐도 한다. 결국 매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 금세 휘발될 자각일지언정.
그런 의미에서 오늘 떠오르는 것은 우리의 몇 번째 그믐달일까. 달이 차고 기울면 모두를 어루만지는 선선한 바람이 다시 불 것이다.
만만치 않은 열기 속에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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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습작(Moonlight Study)>, 1831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길레(Christian Friedrich Gille, 독일, 1805–1899) 종이에 유채, 21.9 x 33.3 cm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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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기념일:
세계 고양이의 날(8일)😸
세계 사자의 날(10일)🦁
광복절(15일)🙌
시아레터를 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9월에도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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