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43 종합 출판사 시공사의 예술, 교양 분야 도서를 발간하는 시공아트의 뉴스레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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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 있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정말 기쁩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간 머리 앤』 저자
"I'm so glad I live in a world where there are Octobers."
—L. M. Montgom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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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까지 이어지던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공기가 파고듭니다. 어느덧 두어 달 남은 올해와 다가온 다음을 생각하는 시기, 시아레터가 다양한 소식으로 찾아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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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통해 탐색한 중세의 삶과 죽음, 예술
중세 시대의 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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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박식하고, 거침없이 흥미롭고,
예상외로 익살맞다!"
제임스 폭스(미술사학자 겸 방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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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의 특정 시기를 속속들이 알고자 할 때 유용한 방법 한 가지는, 하나의 대상을 정해 프리즘으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해당 시기가 방출하는 빛이 그 대상을 통과해 갖가지 색으로 분산되어 기다란 스펙트럼으로 펼쳐진다. 이때 어떤 대상을 프리즘으로 삼느냐에 따라 시대의 빛에 포함된 여러 파장이 굴절되는 정도가 달라지고, 따라서 스펙트럼의 폭과 무늬도 덩달아 달라진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잭 하트넬은 『중세의 몸』에서 인간의 몸을 프리즘으로 삼아 중세라는 시대를 분석한다. 그런데 이 몸이라는 프리즘은 성능이 어찌나 훌륭한지, 이른바 ‘암흑시대(Dark Age)’로 통하는 중세의 희미한 빛도 일단 인간의 몸을 거치면 영롱한 색색의 띠로 변해 읽는 이의 시야를 한가득 물들인다. 그 빛의 스펙트럼을 읽어 나가는 순서는 중세 시대의 의학 저술가가 책을 쓸 때 길잡이로 삼았던 라틴어 문구 ‘아 카피테 아드 칼켐(a capite ad calcem)’과 일치한다. 즉, ‘머리에서 발꿈치로’ 내려가는 것이다.
머리부터 시작해 감각 기관, 피부, 뼈, 심장, 피, 손, 배, 생식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까지, 지은이는 인간의 몸 이곳저곳을 각 장의 제목으로 내걸고 그야말로 “중세 시대 삶의 모든 면을 탐색”한다. 머리에서는 광기와 대머리가 당대의 정치 및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감각 기관에서는 태피스트리 속에 묘사된 일각수와 여성의 관계를 통해 감각의 우열을 따져 보고, 피부에서는 사람의 살갗뿐 아니라 동물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 및 이를 이용한 당대의 출판문화를 둘러보고, 발에 이르러서는 도보 여행과 지도 제작에 관해 알아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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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지은이는 몸과 직접 연관된 의학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과 역사학, 문학, 종교, 시각 예술 전반과 건축, 심지어 음악까지, 온갖 분야를 넘나들며 갖가지 기기묘묘한 이야기로 읽는 이의 넋을 빼 놓는다. 책에 제시된 자료의 양과 범위는 정말이지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방대하다. 비단 유럽 문화권만이 아니라 중세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친 이슬람 문화권 및 히브리어 문화권의 자료 또한 심심찮게 등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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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문화권에 걸친 ‘온갖 분야’의 ‘방대한 자료’란 읽는 이에게는 지식욕을 충족할 절호의 기회를 뜻하지만, 번역을 맡은 옮긴이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역을 의미한다. 출판 번역자로 일한 지 어언 14년, 나에게 『중세의 몸』보다 번역하기 힘든 책은 단언컨대 없었다. 자료를 찾는 데만도 다른 책보다 갑절의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을 다 마치고 전체 원고를 다시 꼼꼼히 읽어 보니, 그 갑절의 시간 가운데 허투루 보낸 시간은 1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은이가 인간의 몸을 빌려 마치 만다라처럼 펼쳐 보인 이 독특하고 화려한 중세상(像)을 한국어로 옮기려면 그 정도 품은 들여야 마땅할 것이다. 품을 들인 보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독자 여러분이 확인할 몫으로 남기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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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에 맞추어 2022년 10월 시아레터 글을 다시 소개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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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장성주
출판 편집자를 거쳐 번역자 및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에 『오컬트, 마술과 마법』, 『파워 오브 도그』, 『산산조각 난 신』, 스티븐 킹의 『별도 없는 한밤에』, 『언더 더 돔』, 〈다크 타워〉 시리즈,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 『제왕의 위엄』,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 우메즈 가즈오의 『표류 교실』 등이 있다. 2019년 『종이 동물원』으로 제13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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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정보가 부족하던 중세 시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체는 매우 생경한 존재였을 것이다. 왼쪽 가슴 아래의 쉼 없는 두근거림, 식사 후 몸 한가운데에서 느껴지는 꿀렁 거림과 같이 내 안에서 느껴지는 작은 움직임들조차 말이다.
표지의 이미지는 원서에 사용된 이미지를 활용한 것으로 신체를 바라보는 중세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잘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몸을 주제로 그들이 만들어낸 신화와 상징적인 요소들을 엿볼수 있다. 그 위에 금색과 적색의 타이포그래피로 중세 시대 특유의 신비롭고 볼드한 느낌을 더했다.
원서의 본문은 작은 판형 속 빽빽하게 글줄이 채워져 있으나 가독성을 고려해 판형과 판면을 키우고 여백을 넉넉하게 분배하였다(원서에 비해 한국어 독자들에게 읽기 편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 편집자와 나의 자부심이 되었다).
인체를 향한 상상력과 시행착오, 실험과 숭배, 이 놀라운 이야기들을 담은 멋진 책을 작업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깜깜한 시대(Dark age)의 빛나는 이야기들을 많은 분들이 펼쳐보시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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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몸’이요.”
“네? 중세... 뭐요?”
출간 전 가제를 언급하면 낯선 조합이라 되묻는 일은 예사였다. 묘한 무거움의 ‘중세’와 인간의 ‘몸’이라니! 이 얼마나 흔치 않은 주제인가. 출간 직후 여러 매체에서 책 소개를 청해 주시며 그 색다른 기대감을 증명했다.
잭 하트넬은 젊은 날의 10여 년을 중세 시대 속 진정한 모습을 탐구하는 데 쏟은 연구자다. 『중세 시대의 몸』은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과하며 펼친 중세론으로 우중충하고 무성의한 선입견을 타파하고자 한다.
단순한 역사적 나열을 넘어선 통합적 접근은 신선한 지식의 향연을 펼친다. 여러 언어권 사료에서 선별한 도판도 함께 제시된다. 인체 해부도에서 미끄럼틀을 타듯 하는 알록알록 표지처럼 다채롭고 강렬하다. 그런 만큼 이 책을 특히나 반가이 즐기실 독자님들은 ‘지적 호기심이 높고’, ‘독서량이 풍성하고’, ‘교양 도서 즐겨 읽고’, ‘나만의 독특한 취향이 있는’ 성인층에 많이 계시리라 상상했다.
새벽달 아래 출근길과 고요한 주말 사무실에서 이어간 빡빡한 작업. 또다시 모시고픈 빼어난 번역과 다각도의 탐구를 반영한 좋은 디자인을 마주할 수 있음은 행복이었다. 탄탄한 만듦새로 빛을 보게 해 주신 모든 분들의 소중한 정성에 고마움을 전한다. 달디단 가을 독서의 즐거움을 독자 여러분이 만끽하실 차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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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다 드디어 전시 마지막 날에 갔다.
회사 기자가 뽑은 7월의 주요 전시 중 하나라 사이트에 등록하며 본 사진, 초록 잎들 사이 외로운 얼굴을 한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자꾸 생각나 사진을 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김옥선 작가는 사진 분야의 레전더리 중 한 명이라는 걸 듣고 전시에 가기로 마음먹은 게 벌써 한 달 전.
그 전부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금희 작가)(창비)을 읽고 나서 사진 신부를 알고 있었다. 하와이에 이주한 가난한 농민들이 아시아 국가의 신부를 얻기 위해 최대한 멋을 내려 정장을 입고 머리를 하고 찍은 남자들의 사진을 보고선 하와이행을 택한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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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근처 갤러리에서 일을 마치고 처음으로 성곡미술관에 갔다. 작고 하얀 건물과 헤쳐지지 않은 나무와 풀숲이 뒤로 펼쳐져 있는 것이 오래된 느낌을 준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예매소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울창한 풀들을 배경으로 큰 창문 앞에 앉아계신 나이가 지긋한 선생님이 김옥선 작가의 전시 리플릿을 건네주셨다.
<사진 신부, 사라> 연작 사진을 보았다. 평소에 편안한 조명이라고 느끼는 주광색과 대비되는 보라색, 노란색, 초록색 불편한 조명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유행이 지난듯한 스테레오티피컬한 요소들이 조금은 불편하고 낯설다는 게 첫인상. 계속 바라보니 그 촌스러운 듯한 세팅에 여러 포즈와 표정을 한 사진 속 인물들이 왜인지 친밀해서 귀엽게 느껴졌다. 시장에서 지나친 그 여자, 강릉에서 마주친 아주머니와 닮은 거 같았다. 그리고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에서 김옥선의 여러 연작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영어 선생님들의 여가 시간을 담은 <함일의 배>, 이주한 여성들의 <베를린 연작>, 그리고 제주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담긴 <빛나는 것들>까지 보고 나오니, 첫만남만에 손까지 잡아버린 이성처럼 한 번의 만남만으로 김옥선 작가의 세계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처음으로 만나본 성곡미술관과 김옥선의 작품들이 주는 생경한 느낌이 낯설고 더 궁금해지는게 마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것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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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벗한 식물과 주변 풍경을 품은 그림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마음도 눈도 맑아지는 듯합니다.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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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바다출판사, 박보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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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콜럼버스의 지도에서 시작합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 타이노 원주민들에게서 한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황금과 보석이 가득한 보물섬 ‘바네케’였죠. 보물에 혹한 콜럼버스는 섬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바네케는 점차 지도에서도 사람들에게서도 잊혀 갔습니다.
에콰도르 출신의 작가 오스카 산틸란은 콜롬버스의 지도를 참고해 바네케의 위치를 찾아갑니다. 현재 도미니카공화국 북쪽 해안, 대서양의 한가운데였죠. 지도에서 소실된 부분이자 비어있는 구멍. 우리에게 익숙한 섬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곳에서 바네케를 발견합니다. 그곳의 바닷물 100리터를 퍼서, 물을 증발시키고 부유물과 소금 결정체로 이루어진 덩어리를 만든 것이죠.
“산틸란은 지각의 다른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실재를 증식시킨다. 애초에 콜럼버스가 오해했던 아메리카 대륙은 존재하지 않았다. 해석과 사건이 실재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할 뿐이다. 산틸란의 바케네 섬은 그 연속적 생성의 소멸과 중간 어디 즈음에 영롱하게 반짝인다.”(55쪽)
<태도가 작품이 될 때>의 박보나 작가는 <바네케>(2016)에서 새롭게 정의되는 실재를 주목합니다. 원래부터 존재했던 땅을 ‘발견’함으로 지워지는 역사가 있다면, 존재하지 않는 땅을 '발견'하므로 무한해지는 기록도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섬은 이야기 속에 존재했다가, ‘섬’의 정의에 맞지 않아 그 권위를 잃었을 것이고, 동시에 잠기거나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신화 속의 공간을 눈앞으로 가져와 보란 듯이 사람들에게 존재를 증명했습니다. 섬은 비로소 이야기의 몸체를 가지게 되며 밟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되었죠. 작가가 발견한 덩어리는 섬의 봉우리였거나 혹은 깔짝거리는 해변의 허리쯤, 그 땅의 일부를 뿌리박고 성장한 코코넛의 부분같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비밀스레 살고 싶었을 수도 있는 섬의 입장이나 납치된 바닷물의 입장은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한 것을 감각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가시화하는 과정. 비로소 섬의 일부를 마주 댈 때의 힘. 이 작품은 미지의 존재를 만난 것처럼 기분 좋은 감각을 회복합니다. 작가가 만들어 낸 소금 덩어리는 정말 바네케의 일부일지 모릅니다. 진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차라리 그렇다 믿는 게 삶이 더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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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개봉작 중 하나인 <거미집>은 다채로운 인물들과 예측 못 할 전개를 담았습니다. 1970년대 영화 제작 현장을 배경으로 한 소동극은 생각보다 독특한 인상인데요. 중간중간 액자식으로 흑백 영화 장면이 등장합니다. 당대 어투를 반영한 대사톤이 신기했고, 다양한 구도와 극단적인 클로즈업에선 알프레드 히치콕 특유의 연출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송강호 배우가 분한 감독 김열은 화제를 뿌린 데뷔작 이후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해 평단과 객석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창작자입니다. 일면 고뇌하는 예술가의 내면 묘사로 보일 때는 왠지 모를 연민도 느껴집니다. 쉽게 찬사받기 힘든 분야에 종사하며 일생 다시 올지 모를 대박을 꿈꾸며 하루하루 애쓰는 모습 같아서일까요. 영화 끝에선 그마저도 뒤틀린 욕망의 과거 행적에서 비롯했음을 보여주며 졸렬한 인간 군상을 비춥니다. 이러한 묘사 때문인지 고 김기영 감독의 유족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가 합의에 이른 우여곡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흐름의 영화가 왠지 식상했던 분들께는 뜻밖에 신선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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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아니쉬 카푸어》
2023년 8월 30일 - 10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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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선보이는 다양한 흔적을 한자리에서 둘러볼 기회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카고 명물이 된 콩 모양 <클라우드 게이트>나 한남동 미술관 리움 외부에 자리한 <큰 나무와 눈> 같은 은빛 대형 조형물로도 대중에게 친숙하죠. '가장 어두운 색'으로 인정된 바 있는 '반타블랙'을 예술적으로 사용할 권한을 독점해 논란을 빚은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7년 만에 열린 개인전을 위해 삼청로 국제갤러리 K1, K2, K3 세 공간 모두에 조각, 페인팅, 드로잉을 비롯한 작업물이 배치되었습니다. 피처럼 붉고 밤처럼 어두운 색과 반짝이는 질감은 강렬한 기운을 뿜어냅니다. 화면으로만 접하던 반타블랙은 정말 인상적이었는데요. 빛을 흡수하듯 어두워 어떤 입체적인 형상도 앞에서 보면 평면으로만 느껴졌습니다.
작가는 "핵심은 무엇이 물질적이며 무엇이 그 물질을 초월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라 강조합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크고 작은 작품 하나하나를 마주하는 동안 자유로운 해석을 품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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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91쪽
노이에 리니에Die Neue Linie 잡지 표지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 (1900-1985),
라슬로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 (1895-1946)
독일 최초의 라이프 스타일 잡지 『노이에 리니에』는 유행에 민감하고 지성적인 엘리트를 대상으로 발행했으나 독자는 대부분 여성 이었다. 헤르베르트 바이어가 디자인한 포토몽타주 표지들과 소문자 제호는 그가 바우하우스에서 실천한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디자인을 기반으로 만든 것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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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e Neue Linie, 1929–1938 잡지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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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너머의 실상
오래 전 한 교수님이 종종 역설하시던 바가 있었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게 현실’이라는 요점.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인정하며 거기 발 딛고 살아내야 어른이라셨던 것 같다.
서글프게도 우리 대부분은 알고 있다. 어린 날 듣던 아름다운 금언(金言)의 성취는 쉽지 않다는 걸. 이를테면 노력이 모두에게 성공을 보장하진 못한다. 남모르는 수고가 공공연히 치하받는 일은 드물다. 권선징악은 픽션 속 대리만족일 때가 더 많다. 찰나의 찬사나 비난, 무관심을 받는 결과 아래에 말 못한 진실이 묻히기도 한다. 저마다 씨름하며 자기 삶의 무게를 지고 간다. 국적, 연령, 성격이 다른 다양한 이들을 만났을 때 문화 차이를 막론하고 쉽게 공감대를 이루게 된 사실은 ‘삶이란 만만치 않게 힘들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체득하며 기대를 놓아 버린 ‘어른이’도 ‘그럼 무얼 위해 너절한 현실을 애써 살아내야 하는 거냐?’는 다음 세대의 질문에 즉각 염세적인 답을 주기가 망설여진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그래도 OO을 위해 하루씩 살다 보면...’ 하고 운을 떼지 않을까. 실제로 신념의 표방이든, ‘목구멍이 포도청’이든, 고민은 접고 매 순간을 맞이할 뿐이든, 소중히 아끼는 존재 때문이든 각자의 답이 있을 것이다.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근원적 감사가 지금껏 이 위태로운 자아를 지탱해 왔듯이.
그래서 결과까지 완전히 통제할 수 없으니 적어도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아 보자는 책(『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The Anxious Perfectionist)』, 마이클 투히그, 클라리사 옹 지음)의 조언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치 치하 경험을 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 저자이자 의미치료(Logotheraphy)를 주창한 빅터 프랭클의 ‘겪어야 할 상황을 고를 수 없는 때에도 그걸 대하는 자신의 태도는 택할 수 있다’는 유명한 메시지도 비슷한 선상으로 다가온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모두에게 단순하고 또렷한 이유들이 이따금 확인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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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으며]
"가을이 짧습니다. 그래도 즐거움은 길게 남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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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장면 나눠 주신 저자님, 이번에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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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전하는 속보가 연일 가슴을 칩니다.
다른 입장과 시각이 존재합니다만 무수한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깝습니다.
지금 서 계신 현실의 쉼 없는 격랑 속에도 부디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11월의 만남을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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