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면 곧장 침대에 눕는 날이 많아졌다. 간신히 옷만 갈아입거나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로 누워서는 식사, 씻기, 정리 같은 소소하고 기본적인 일들을 할 힘을 모은다. (물론 핑계다.) 화장대에는 오늘 밤 사용해야 할 제품이 일곱 개 정도 놓여 있지만 보통은 네 개, 자주 한두 개로 타협한다. 한 단계마다 피부에 충분히 스며들 3-5분의 기다림은 무시한다. 나는 ‘씻지 않으면 못 자’는 사람이 아니다. 반대에 가깝다. 하루의 피로가 성실히 모여 만들어 내는 노곤함과 익숙한 침대의 포근함에 쉽게 항복한다. 어릴 때 자주 친구들과 열심히 놀다 문득 해가 저문 사실을 발견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던 것처럼 청춘은 그렇게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침대에 누워 조금씩 청춘이 지나는 것을 본다. 채 씻지도 못한 채로. 그러면서 이 책을 읽는다. 동년배의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직장에 다니고,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새로운 결심을 하는 이야기. 책을 읽은 여러 독자가 작가의 성실함에 경의를 표하자 그는 이렇게 일갈했다. “내 생활은 건강하지 않다. … 다 쓴 치약을 쥐어짜듯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뿐, 계획적으로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돈을 목적으로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고료를 받는 것 이상으로 매일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결심을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 이 책은 다이어트 기록도 아니고, 스스로를 무조건 다독이는 글도 아니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오늘 밤은 정성껏 씻고 자야지….’ 참, 화장품 수는 좀 줄여야겠다. |